트럼프가 다시 돌아왔다. 8년전 그가 45대 대통령으로 처음 당선되었을 때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가짜뉴스와 막말을 동원한 포퓰리즘이 승리했다며 이를 정상을 벗어난 이상치(outlier)로 보았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에 다시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뿐만 아니라 상원과 하원도 모두 공화당이 차지해 사실상 트럼프는 견제할 수 없는 세계 최고 권력이 됐다. 트럼피즘이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 된 것이다.
선거후에는 수많은 사후분석이 뒤따른다. “부자 고학력 엘리트들의 위선이 탈선을 낳았다. 러스트벨트의 백인노동자 계층이 분노했다, 고물가와 인플레이션의 고통이 컸다, 여성 대통령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다, 전쟁지원이 실망을 안겼다” 등등. 모두 일리 있지만 이 낯선 권력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필자는 디지털 관점에서 이를 보고자 한다.
디지털은 돈과 성질이 비슷하다.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지만 실물과 결합하면 보이지 않게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지배한다. 클린턴 시대 신경제는 120개월 넘게 경기가 팽창했고 주가는 4배이상 뛰었다. 모든 것을 연결하는 디지털이 세계화로 국제분업을 가속시키고 컴퓨터가 산업화 시대 기계를 바꿔 극한의 효율을 끌어올린 덕분이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디지털은 새로운 자산가와 지식층을 탄생시켰다. 지식도구로서 사람들의 생각과 관계를 바꿨다. 웹과 모바일로 연결된 민중은 연결되었지만 대중처럼 집단이 아니며, 개인이지만 다른 개인들과 연결되어 혼자가 아니다. 그들은 산업화 시대의 단순 대중미디어 수용자에서 디지털 시대에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소셜미디어로 공유하는 '연결된 개인'으로 변화했다.
그 결과 디지털은 소득과 변화수용을 기준으로 나누던 전통적 정당 지지세력을 성별, 업종, 정체성 등으로 다시 재편했다. 쇠락한 제조업지대(rust belt)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디지털 소외감에 민주당을 떠났다. IT업계 피터 틸, 일론 머스크 등 혁신가들도 디지털 규제를 피해 트럼프쪽으로 갔다. 반면 딕 체니를 비롯 군사력을 중시하는 네오콘은 민주당으로 돌아섰다.
이렇게 하부 토대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상부의 정당, 언론은 여전히 그대로다. 이번에 20선 고지에 오른 펠로시 전 하원의장, 50년동안 정치를 한 바이든 대통령 등 민주당 기득권은 2019년에 지지율 불과 1%에 불과했던 카밀라 해리스를 후보로 급조했다. 당원과 국민은 소외됐다. 지식의 가장 중요한 플랫폼인 언론도 마찬가지다. 주류 언론(MSM : Main Stream Media)들은 엘리트 의식과 거대담론에 빠져 여론을 알지 못했다.
주가가 오르고 GDP는 고성장 했지만 가파르게 오르는 식료품 가격 하나도 잡지 못했다. 가자에서 수만명의 난민이 학살당하는데도 이스라엘군에 지원이 계속됐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자신들의 메아리에 갇혀 예측을 완전히 헛짚었다. 한마디로 디지털 시대로 바뀐 미국의 하부와 상부가 완전히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전통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빨라질수록 지지자들의 재편도 커질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연결된 개인들은 고담준론과 정치적 올바름 같은 이미지에 지쳤다. 그것이 쌍스럽든, 허풍이든 효능감있는 '실제'를 원한다. 디지털 시대,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
임문영 미래전환모임 대표 seerl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