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면서 유럽 각지의 박물관들이 황금 유물을 노린 절도범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고가 유물을 녹여 금괴로 만들어 되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역사적 유물이 영구히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최근 발생한 절도 사건들은 범죄 수법이 갈수록 대담하고 전문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6일 새벽, 영국 웨일스의 세인트 페이건스 국립역사박물관에는 2인조 도둑이 침입해 청동기 시대 황금 장신구를 훔쳐 달아났다. 지난달 16일 프랑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는 절단기와 가스 토치 등 전문 장비를 사용해 방탄유리를 뚫고 60만유로(약 10억원) 상당의 희귀 금 원석 표본들이 도난당했다. 박물관 측은 범인들을 “어디로 가야 할지 완벽하게 아는 전문가팀”으로 추정했다. 특히 이 박물관은 범행 두 달 전 사이버공격으로 경보 시스템이 무력화된 적이 있어 보안 공백이 범행의 빌미가 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지난 1월 네덜란드 드렌츠 박물관에서 발생했다. 절도범들은 폭발물로 문을 부수고 침입해 불과 3분 만에 루마니아 국보급 유물인 '코토페네슈티의 황금 투구' 등 약 600만 유로(약 88억 원) 상당의 유물 4점을 훔쳤다. 이 사건은 루마니아 박물관장의 해임과 양국 간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당시 박물관에는 야간 경비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연쇄 범죄의 동기가 유물의 역사적 가치가 아닌 치솟는 금값에 있다고 지적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금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3,977.19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난당한 유물들은 너무 유명해서 암시장에서 거래하기 어렵기에 범인들이 유물을 녹여 금괴로 만들어 되팔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 측은 “희소성이 있어 유통하기 어려운 문화재보다 바로 녹여버릴 수 있는 금이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박물관 절도는 유럽에서 수백 년 된 낡은 건물과 느슨한 보안 시스템 탓에 상당히 흔하게 발생한다. 최근에는 사이버공격이라는 새로운 위협까지 등장하며 보안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유럽 각국 경찰은 인터폴 등과 공조 수사를 벌이고 있으나, 도난당한 예술품의 평균 회수율은 5∼10%에 불과해 황금 유물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