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인사를 할 때 큰 의미 없이 ‘잘 지내니?’ ‘요즘 어때?’ 또는 조금 길게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묻는다. 그러면 ‘그냥 그래’ ‘그저 그래’ 또는 ‘매일 똑같지 뭐’라고 답한다. ‘넌 어때?’라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성의가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요즘 난 진짜 어떻게 지내고 있지? 라고 되묻고 싶기도 했다. 삶의 의미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 스스로에게 무엇인가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삶은 곧 詩]라는 제목으로 밴드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편씩 쓰기로 했던 일이나, 지내면서 그 날 보고 느꼈던 것을 편하게 글로 옮겼다. 처음엔 시의 형식을 빌리기로 마음먹었는데 글이 길어지면서 수필이 되고 말았다. 이 글을 쓴 지 꼭 1년이 되었다 365개여야 하는데 401개가 되었다. 하루에 두 개 쓴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냥 느끼면 썼으니까. ‘그저 그래’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최근 몇 년간 한 일도 많다. 2023년 ‘양악수술’ 책을 썼고, 2024년에는 ‘달인이 될 수 있는 발치기법 2판’이라는 일본책을 번역했다. 1판이 잘 팔렸나 보다. 2판에 우리 실정과 맞지 않는 일본 이야기가 너무 많이 있어서 번역하면서 처음으로 <역자 주석>이라고 설명을 추가한 적도 있다. 취미도 지금도 하고 있는 테니스, 골프를 포함하여, 첼로, 클라리넷 등 많지만 글쓰기를 좋아하여 많은 글을 써왔다. 혼자 생각에 대한치과의사협회지나 치의신보에 가장 많은 글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많이 썼다. 군복무 할 때도 쉬지 않고 10년 동안 매월 200자 원고지 100장 이상씩 써서 게재했던 것들을 모아서 1993년 만든 책이 <구강악안면외과영역의 소수술>이다. 당시 2000부 이상 팔리면 베스트셀러라고 했는데, 소문났던(?) 필자의 첫 번째 책이다. 그림도 그렸다. 내가 시간에 맞춰서 가지 못하니까 아무 때나 시간 날 때 와서 연습하라고 학원 열쇠를 주기도 하였다. 선생님의 마음에 부응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산란하여 이젤 앞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일을 만들었다. 2년 전에 일간지 신춘문예에 단편소설로 응모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떨어졌다. 단편소설은 200자 원고지 80장 분량인데, 10년 동안 매월 100장 이상 썼으니까 80장 정도야 주제만 떠오르면 앉은 자리에서 1편 쓰는 것도 가능했다. 결과는 소설이 논문이 되어버렸다. 다음 해는 시로 응모했다. 기다렸었다. 안 됐다. 당선작들을 보면 단어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대학에서 어려운 말 쓰는 방법을 가르치나 라고 생각했다. 올해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치매검사를 받았는데 학력에 따라 합격점도 달랐는데, 나름 최고학력인데도 단어의 뜻도 어렵고, 詩에 내포된 의미를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내가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너무 편하다. 누구나 알 것 같은 나태주의 詩 ‘풀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붙여 쓰면 한 줄도 안 된다.
여기에 내 마음을 보탠다면 ‘그냥 보아도 예쁘다’라고 하고 싶다.
‘추억’이라는 詩도 있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 했어요/ 그래, 그 목소리가 참 좋았다/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나요?/ 그래, 그 안부가 참 고마웠다/ 저를 위해서라도 건강하셔야 해요/ 그래, 옛날에 그런 시절도 있었다./ 이 詩가 내 마음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자극에도 통증을 느끼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이라는 질환과 선천적으로 통점, 냉점, 온점 등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선천성 무통각증 및 무한증(CIPA: Congenital Insensitive to Pain with Anhidrosis)이라는 질환이 있다고 한다. 전자는 외상 후 발생되며, 후자는 매우 희귀한 유전성 질환이라고 한다.
CRPS처럼 작은 자극에도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CIPA는 겉으로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자신의 질환을 인식하지 못하여 중증 상태가 되어서야 알게 되어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몸에 이상이 있을 때는 통증이 나타나서 우리가 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람의 건강 문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단체에서도 내부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곪아터질 때까지 느끼지 못한다면 개선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동안 치의신보의 이 평론이라는 공간을 통하여 대한치과의사협회와 관련된 일들에 대하여 필자의 의견을 이야기 해 왔었다. 詩나 수필과는 달리 평론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 즉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내부를 속속히 알고, 분석하여 비판하기도 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면서 격려하고 응원하여야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내부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치과계 실무에 관여하지 않은 지도 오래됐고 감각도 무디어졌다.
그리고 올해 대한치과의사협회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치과계도 서로 화합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앞으로 잘 될 것 같다. 이것을 계기로, 이제 필자는 평론에 적합한 글을 쓰기에는 아는 것도 없고, 아는 것이 없으니 정확한 이해도 부족하여 이번을 마지막으로 평론 집필을 끝내려고 한다.
요즘 1962년에 사망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1996년 발간된 “나의 아픔이 너에게 위안이 된다면”이라는 책에 빠져있다. 또 다른 것을 계획한다.
‘그 때’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 때 나는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랬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날 이전처럼 모든 것이
맑고 한 점의 티도 없었을 것을!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때는 왔다.
짧고 불안한 그 때가.
하여 총총 걸음으로 속절없이
청춘의 빛을 모두 걷어 가 버렸다.
끝으로 그 동안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