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불안의 시대

2025-08-07

일본·유럽연합(EU)과 비슷한 선에서 합의하면서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이번엔 더 센 폭탄이 날아올 태세다. 반도체 품목 관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반도체에 약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지난달 말 관세 협상에서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다지만, 반도체는 ‘부동의 수출 1위’ 아이템이어서 파장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사실상 빈집’ 상태였다는 삼성전자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미국 텍사스주)에 꽤 괜찮은 일감이 생겼다는 게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애플이 이곳에서 아이폰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 칩을 공급받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으로선 지난달 테슬라에 이어, 이번에 애플의 선택을 받으면서 대만 TSMC에 한참 밀리던 처지에서 체면을 세우게 됐다.

규제 법안 추진, 연이은 사고에

한번 걸리면 낭패…‘몸조심 모드’

두려움 아니라 활기 돋게 해야

SK하이닉스도 2028년 가동을 목표로 인디애나주에 패키징(후공정) 생산기지 조성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약속하거나 지금 짓고 있다면 관세는 없다”고 선언했으니, 두 회사에 대해 추가 투자 압박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관세 협상에서 미국에 투자를 약속한 돈이 3500억 달러(약 486조원)다. 대부분은 보증과 대출이라고 하지만 사상 초유의 투자 규모다. 주요 프로젝트는 기업이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협상을 측면 지원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는 국내 제조업이 자칫 ‘빈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가 된다. “기업 투자라는 성장 엔진이 국내가 아닌 미국으로 이전된다는 의미”(강태수 KAIST 교수)라는 해석이다. 안 그래도 한국 경제는 ‘투자 가뭄’인데, 남의 논에 물을 대야 하는 격이다.

그런데 요즘 기업 전반을 지배하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몸조심’이다. 대기업일수록 더 심하다. ‘대마(大馬) 불안의 시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고용·부채 같은 ‘몸집 영향력’ 만으로 살아남으려던 ‘대마불패(大馬不敗) 신화’가 깨진 게 20년 전이라면, 이제는 몸집이 크면 클수록 더 몸을 사린다는 얘기다. 정권 초기 군기 잡기를 넘어 이른바 ‘기업 옥죄기’ 법안을 예고하면서 이런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한 번 걸리면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근저에 깔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잇달아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여름휴가 중 날아온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SPC삼립 시화공장을 찾아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문제”라고 질타했다. 야간 12시간 작업에 대해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며 근무 시스템 개선을 주문했다. SPC는 이틀 뒤 생산직 사원의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달 말로 국회 처리가 연기됐지만 노란봉투법이나 ‘더 센 상법’도 논란이다. 노란봉투법의 당초 취지는 불법파업·가압류 등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과도해 이 문제를 개선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원청 기업의 사용자성 확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슈가 커졌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이 담긴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계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참담한 심정”이라며 재검토를 호소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나 SPC를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단순히 대표이사 교체가 아니라 사람을 부품 취급하는 마인드가 근본부터 고쳐지고, 산재 예방 시스템도 재정비해야 한다. 그런데 면허가 취소돼 기업이 사라지면 하청 업체를 포함해 수천 개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 더욱이 이 회사에 소속된 직원은 잘못이 없다.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는 과도한 손배소도, 대주주 전횡도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투기 자본 위협, 경영 기밀 유출 우려 목소리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기업이 ‘눈치보기’에만 열중한다면 얘기가 완전히 다르다. 투자도, 내수도 살아나지 않는다.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명분 삼아 국내 투자에 더 소극적으로 임할지 모른다. 규제 법안 통과에 대한 조급증 대신 기업이 가진 불신과 불안을 걷어내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대통령의 현장 방문과 개선 메시지는 고질적인 산재 문제점이 고쳐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와 함께 혁신 콘셉트도 더해지면 어떨까. 가령 자율주행 택시같이 규제 논란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미래 먹거리 현장을 찾아 정부의 지원 의지를 강조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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