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24시간
지난 9월 12일 인천국제공항. 한 남성이 플래카드를 들었다.
한국이 호구냐.
이날은 미국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들이 귀국하는 날이었다. 플래카드에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제복을 입고 소총을 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합성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왼쪽 상단의 ‘We’re Friends! Aren’t we?(우리는 친구잖아, 그렇지?)’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퍼포먼스의 주인공은 이제석(43)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다. 남들은 ‘광고 천재’라 부르지만, 경기도 고양시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스스로를 ‘광고 바보’라 일컬었다.
그의 20대는 화려했다. 2007년 세계 3대 광고제로 꼽히는 원쇼 페스티벌과 클리오 어워드에서 최우수상을, 광고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ADDY 어워드에서는 금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각종 국제 공모전을 휩쓸며 ‘광고 천재’란 별칭을 얻었다. 국제 무대에서 그가 거머쥔 메달만 30개. 2009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이제석광고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러나 돈을 쓸어담으리란 예상과 달리 그는 돈 안 되는 공익광고에 주력했다.

그의 연구소는 정부, 공공기관, 비영리단체와 협업하며 환경 오염, 기아, 자살, 마약, 폭력 등 범국가적 의제를 다룬다.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광고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연구소에서 상업 광고 비중은 10%도 안 된다”고 말했다.
돈이 되는 상업 광고를 늘리지 않는 그를 두고 “얼마나 더 고생할 거냐”는 핀잔이 따라붙었다.
그는 “돈이 벌리면 좋겠지만 돈 자체에 매달리고 싶진 않다”며 “광고 바보인 셈”이라고 겸연쩍게 웃었다.
인천공항에서의 플래카드 퍼포먼스를 벌인 것도 그의 ‘바보’스러운 면모가 드러난 행위였다.
“그건 공익 이슈를 알리는 광고 행위였어요. 말하기 조심스러운 사안일수록 더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단풍은 물드는 게 아니라 물이 빠져 본연의 색이 드러나는 거예요. 40대에 접어들며 정체성이 명확해졌죠.”
일을 하는 방식도 ‘바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엘리베이터 대신 미련하게 계단을 고집하는 바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슈가 생기면 직접 현장을 찾는다. 어떤 사건이든 ‘관계자–현장–기록’ 세 갈래를 따라가며 실제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는 편이다. 그는 “과도한 노력이라는 지적을 받지만 효율을 따지면 놓치는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같이 비효율을 마다하지 않는 태도가 그의 일과 삶을 이끌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