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딥시크 모멘트

2025-02-28

중국의 AI 모델 딥시크(DeepSeek)가 공개된 지 한 달 정도 지났다. 깨기 어렵게 높아지는 성채 같던 엔비디아의 주가가 급락하고 미국 에너지 회사들의 주가도 타격을 입을 정도로 여파가 컸다. 딥시크가 더 적은 고사양 칩을 쓰고 그에 따라 더 적은 에너지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후 사실 확인과 반박이 이어졌지만, 미국만의 리그로 펼쳐지고 있었던 AI 전장에 딥시크의 등장은 충격적이다.

이러한 충격은 ‘스푸트니크 모멘트’에 비유되고 있다. 스푸트니크는 구 소련이 세계 최초로 발사에 성공한 인공위성의 이름이다. 1957년 10월 4일의 일이었으니 7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딥시크의 등장에 냉큼 소환될 정도로 미국 현대사에 각인되어 있는 사건이었다. 필자가 스푸트니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미국의 교육과정에 대해 조사할 때였다. 미국의 교육 패러다임은 스푸트니크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그 파장이 대단했다. 이듬해인 1958년에 통과된 ‘국가방위교육법’이 대표적인데, 이 법은 연방정부가 대학교육에 개입한 최초의 입법이 되었다.

효율적 영재 교육방법 연구 필요

우리 공교육은 수준별 학습 금지

미국에선 교장이 반 배정 결정도

인재들 의대 쏠림현상도 바꿔야

흥미로운 사실은 그때까지 미국인이 생각하는 대학교육은 철저히 개인적인 선택이어서,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국가방위’를 내세운 ‘국가방위교육법’ 입법 과정에서 주요 쟁점이 ‘장학금을 줄 것인가’, ‘학자금 대출을 줄 것인가’였을 만큼 접근이 보수적이었다. 결국 저리의 학자금 대출로 법이 통과되었다. 이후 미국의 대학생 수가 1960년에 360만 명에서 1970년에 750만 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대학교육은 크게 확대됐다. 이른바 STEM교육(과학·기술·공학·수학의 융합 교육)의 시작도 국가방위교육법에서 찾을 수 있다.

스푸트니크 모멘트로 촉발된 미국 교육 개혁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영재교육 지원의 법적 근거가 처음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뛰어난 학생’을 식별하고 격려하기 위한 지원·상담·평가에 대한 조항이 국가방위교육법에 담겼다. 각 주의 초·중등학교에서 뛰어난 학생을 발굴하고 이들에 대해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하는 한편, 이들이 동일한 진로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하는 예산과 지원 항목을 규정했다. 이후 1988년 제정된 ‘자비츠 영재교육법’은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진흥법’(2000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법만큼 중요한 것은 이것이 사회에 어떻게 수용되어 문화로 정착했는가이다. 필자가 십 년도 더 전에 연구년으로 미국에 오래 머물게 됐을 때 큰애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가장 놀랐던 점은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 교사의 재량이 크고 반 배정 등에 교장의 결정 권한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이다. 큰애는 3학년으로 전입해서 못하는 영어에도 불구하고 1년을 놀며 배우며 잘 지냈다. 필자도 한국에서는 바빠서 제대로 못하던 엄마 노릇 해보자 싶어 교실 자원봉사부터 학교 후원회와 운영위원회 활동까지 최대한 참여했다.

그러고 아이가 4학년이 되었는데, 후원회와 운영위원회 하며 알게 된 부모들의 4학년 자녀가 다 같은 반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명문대 출신으로, 학교 전체에서 유명한 분이었다. 필자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해서 4학년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한 번은 숙제가 ‘형법과 민법의 차이와 그러한 체계가 시민사회에 갖는 의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어서 경악했던 기억이 있다. 대놓고 하지 않을 뿐이지 수준별 학습을 하고 있었고, 그러한 학생 배분은 교장이 결정했다. 필자의 노력봉사도 반 배정에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먹튀’가 되어서 학교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공교육 현장에서 수준별 학습이 금기시된 지 오래다. AI 전환이 화두인 이 시대에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똑같은 지식을 전달받는 게 결코 맞을 리 없다. 모의고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잘 보이는 복도 벽에 전교 등수를 게시하고, 자습실 자리 배정도 성적순으로 하던 시절이 좋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우리도 딥시크 창업자 량원평이나 개발자 뤄푸리 같은 천재들이 필요하고,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니 더 어릴 때부터 찾아 더 잘 키워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더 답답한 것은 우리가 ‘딥시크 모멘트’를 맞은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인재가 다 의대 가거나 미국 가려 한다는 냉소가 만연하다. 그러므로 더욱 지금 바뀌어야 한다.

민세진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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