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퇴직연금, 안전자산에 치중…투자 전략 안보여" [퇴직연금 프런티어]

2025-11-25

“퇴직연금의 성과를 결정짓는 것은 제도의 ‘형태(form)’가 아닙니다. 핵심은 ‘자산 배분 전략(asset allocation)’입니다.”

데이비드 블레이크 영국 런던시립대 베이스경영대학원 교수가 2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퇴직연금 제도가 겪고 있는 저수익 문제를 “제도의 탓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라고 못 박았다. 블레이크 교수는 영국 ‘연금연구소(Pensions Institute)’를 설립한 연금경제학 권위자다.

한국 퇴직연금의 장기 수익률은 2%대에 그친다. 이에 대해 블레이크 교수는 “한국의 퇴직연금이 부진하다는 해석은 틀렸다”며 “위험을 거의 안 지는 데서 오는 자연스러운 결과(low risk, low return)”라고 꼬집었다. 한국 퇴직연금 자산의 80~90%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는 구조를 지적한 것으로 안전자산 위주의 디폴트옵션, 좁은 투자 범위, 지나치게 제한된 위험 허용도가 결국 수익률을 제약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에서 논의 중인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제시했다. 블레이크 교수는 “계약형이든 기금형이든 제도가 성과를 좌우하지 않는다”면서 “가입자 중심의 거버넌스, 자산 배분, 기여율이라는 3요소가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 제도도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기금형 확정기여형(DC) 구조인 영국의 마스터트러스트조차도 투자 전략이 성과를 만든 것이지 ‘제도’ 자체 때문은 아니라는 얘기다. 블레이크 교수는 ‘좋은 디폴트펀드’를 결정하는 핵심 기준으로는 △명확한 자산 배분 전략 △합리적인 위험 조정 경로(glide path) △낮은 수수료 구조 △충분한 기여율 네 가지를 제시했다.

영국 투자협회(IA)에 따르면 영국의 평균 DC 디폴트펀드 글라이드패스는 생애 주기별로 자산을 정교하게 조정한다. 은퇴 30년 전에는 해외·영국 주식을 합쳐 82.5%를 주식에 투자해 장기 수익을 극대화하고 은퇴 5년 전에는 주식 비중을 50.2%로 낮추며 채권을 33%까지 확대한다. 은퇴 시점에는 주식이 31%로 줄고 채권·현금이 59%를 차지한다. 블레이크 교수는 “영국의 높은 DC 성과는 바로 이런 자동화된 위험 조정 구조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블레이크 교수는 한국 연금 개혁을 위해 다섯 가지 로드맵을 제시했다. △국가퇴직연금신탁(NEST)형 디폴트펀드 도입 △가입 초기 손실 최소화 설계 △글로벌 성장 자산 비중 확대 △충분한 기여율 확보 △장수 위험 관리를 위한 종신연금 도입이다. 그는 “이 요소만 갖춰지면 제도 형태가 무엇이든 한국 연금은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며 “핵심은 디폴트펀드 중심의 투자 전략”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아울러 기업 규모에 따라 퇴직연금 도입률 격차가 크게 나타나는 한국의 현실에서 NEST

제도는 특히 참고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블레이크 교수는 “NEST가 성공한 이유는 행동재무학 기반의 설계”라며 “가입 초기 5~7년은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는 ‘기초 단계’를 두고 이후 점차 성장 자산 비중을 높인다”고 했다. NEST는 저위험 50%, 성장 자산 50%로 시작해 단계적으로 공격적 자산 배분으로 이동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영국에서도 중소·영세 사업장의 낮은 가입률과 운용 역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구축된 모델이다. 그는 “NEST의 낮은 수수료와 독립적 거버넌스는 민간 마스터트러스트의 비용·투명성·서비스 개선을 촉발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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