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작은 턱 앞에서 돌아선다...모두에게 열린 1층을 만들자

2024-12-24

어린 시절 장애인 복지시설에 살았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1주일에 한 번쯤 친구들과 외출을 감행했다. 계단 없이 1층 입구에서 곧바로 진입이 가능한 노래방이 하나 있어서다. 그곳은 장애를 가진 청소년이던 우리가 바깥 세계로 나가는 베이스 캠프였다. 일단 노래방을 갈 수 있게 되자 누군가 접근이 가능한 화장실을 찾아 정보를 공유했다. “노래방 건너편 은행 안에 작은 턱 하나만 오르면 갈만한 화장실 있어.”

1997년 장애인 등 이동 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설치를 규정하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편의증진법)’이 제정됐다. 덕분에 이용 가능한 시설이 늘었지만, 집 근처 식당, 편의점, 동네 빵집의 문턱 앞에는 여전히 한두 개의 계단이 남아있다.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바닥 면적 300㎡(약 90평) 이상의 근린생활시설만이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를 졌기 때문이다. 가까운 식당, 제과점 등 소매시설은 바닥 면적이 훨씬 작다. 지난해 기준 전국의 일반음식점 가운데 300㎡ 이상인 곳은 전체의 2.8%에 불과하다.

접근이 가능한 1층의 노래방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험난한 세상으로 나아갈 교두보가 된다. 반면 갈 수 없는 1층은 내가 이 사회의 일상을 공유하는 구성원이 아직 아니라는 신호다. 겨우 찾은 식당 문 앞에서, 식당 안에서 밥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계단 한두 개 때문에 식사를 포기하면 식사보다 더 중요한 것도 포기하고 싶다. 키오스크를 다루지 못해 주문을 멈추고 음식점 안에서 발길을 돌린 어르신이나, 아이와 모처럼 외출한 날 ‘노키즈존’이라며 입장을 거부당한 부모라면 이해할 것이다.

대법원,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 인정

지난 19일 대법원은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편의시설 기준을 20년 넘게 개정하지 않은 정부의 조치는 위법하며, 국가는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결했다. 300㎡가 넘는 소매점이 극소수에 불과하고, 우리 사회의 경제, 문화적 수준은 크게 높아졌는데 정부가 아무런 개선 입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가 생겨서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온라인 쇼핑도 활성화되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접근권’이란 헌법상의 기본권이며 스스로 결단하고 그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온라인 쇼핑이 가능하더라도 점심시간에 만난 친구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에 가는 길에 꽃집과 서점에 들르고, 갑자기 배가 아프면 약국에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모두의 1층’이라는 이름 아래 한 사회단체는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해 골목 상점가를 찾아다니며 경사로를 설치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대학생들은 학교 근처 ‘배리어 프리 지도’를 만들고 1층만이라도 들어갈 수 있도록 가게 운영자를 설득하고 간이 경사로를 만들었다. 변호사와 장애인 단체는 공익 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법원은 정부가 정한 면적 기준이 장애인 등 이동 약자의 소규모 시설 접근권을 제한하므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그제야 정부는 바닥 면적이 50㎡ 이상인 편의점이나 식당 등도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기준을 바꿨다. 미국·독일·영국·호주 등에서는 면적과 상관없이 모든 공중이용시설에 이동 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을 설치할 법적 의무를 부과한다. 개별 시설에 따라 구조상, 안전상의 이유가 있으면 그 의무를 유예할 뿐이다.

민원이 경사로 설치 막기도 해

개정 법령은 시행일 이후 새롭게 시설을 짓는 경우, 또는 기존 시설을 증축·개축·대수선하거나 용도 변경을 할 때 적용된다. 문제는 내부 시설을 싹 바꿔 카페가 나간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와도 현실에서 ‘대수선’이나 ‘용도 변경’으로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재 50㎡보다 작은 규모의 시설은 그보다 큰 시설로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완전히 탈바꿈해도 여전히 편의 시설을 설치할 법령상 의무를 지지 않는다.

아직 편의 시설이 없는 소규모 시설의 소유자나 관리자가 적극적으로 시설을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2017년 경산시의 한 작은 서점은 법적 의무와 무관하게 휠체어를 이용하는 독자를 위해 출입구에 경사로를 설치했다. 하지만 관할 관청은 경사로에 대한 도로 점용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민원이 들어온다는 이유였다. 안타깝게도 법적 의무가 없다는 사실은 ‘안 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넘어, 현실을 개선하려는 사람의 뒷덜미를 잡을 구실이 된다.

모든 공중이용시설이 장애인 등 이동 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을 하루빨리 갖추도록 법령을 정비하고, 경사로 등을 마련하는 건물주를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자. 그 시설이 조금 거슬린다는 이유로 민원을 제기하지 말자. 택배를 운송하는 사람, 유아차를 끄는 부모, 나이가 들어 보행이 어려운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다. 그뿐이 아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순간 대통령은 왜 평소 정부의 공식 발표 때와 달리 수어 통역사를 동반하지 않았을까. 집회에 나온 젊은이들은 왜 연단에 경사로를 설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 지적하는가. 나와 다른 ‘타자’의 접근성을 의식할 줄 아는 역량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의 바탕이 아닐까. 적어도 이 시점에서 모두의 1층은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향한 베이스 캠프다.

김원영 변호사·작가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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