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47)가 어제 1박2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출국했다. 이번 방문은 미 행정부와의 가교 역할을 해 달라는 재계 요청을 받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평소 친분이 두터운 트럼프 주니어를 초청해 성사됐다. 전날 오후 6시 넘어 입국해 정 회장과 2시간가량 만찬을 함께한 트럼프 주니어는 이날은 숙소인 서울 역삼동 조선 팰리스 강남에서 오전부터 재계 인사들과 일대일 차담 형식의 릴레이 면담을 가졌다. 내로라하는 재계 총수 20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막후 실세로 떠오른 트럼프 주니어와 연을 맺으려고 개인당 짧게는 30분 안팎의 면담에도 열 일 제쳐놨다는 후문이다.
누구보다 아버지 신망이 두터운 트럼프 주니어는 J D 밴스 상원의원을 부통령으로 추천했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상임고문으로 공직 후보들의 충성심을 검증하는 역할을 자처했고, 현재는 아버지를 지원하면서 트럼프 일가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다음 대선에서 밴스 부통령과 러닝메이트로 도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은 공개 행보를 꺼렸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밤의 소통령’ 현철씨, ‘홍삼 트리오’로 불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3형제인 홍일·홍업·홍걸씨가 비리에 연루돼 아버지 재임기간 또는 차기 정부에서 형사처벌을 받은 뒤로는 여론도 당연하게 여겼다. 이와 달리 문재인 전 대통령의 아들인 준용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야당 정치인의 특혜 의혹 제기에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언론과의 인터뷰에도 수차례 나섰다. 다른 아들들과 달리 아버지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는 이른바 ‘패밀리 비즈니스’로 엮이지 않은 덕분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을 듯하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국정 개입을 극도로 경계하는 한국에서 트럼프 주니어처럼 대통령 아들이 국내외에서 공개 행보에 나선다면 여론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미국에선 대통령의 가족을 ‘키친 캐비닛’으로 지칭하며 대통령에게 자문하거나 인사에 관여하는 데 관대하다고 하니 우리 정치문화와 사뭇 대조된다.
황계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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