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으로 저항하는 세대, 거리와 SNS를 장악하다

2025-10-02

불평등 사회와 부패한 정부에 맞서 시위에 나선 아시아 청년들은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과 개성 있는 시위 아이템을 통해 저항하고 연대했다.

인도네시아 청년들은 ‘용감한 분홍’(브레이브 핑크) 운동을 벌이며 SNS를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이들은 분홍색 색감의 필터를 씌운 ‘셀카’나 풍경 사진, K팝 아이돌 사진 등을 공유하거나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다.

누리꾼들이 분홍색을 선택한 이유는 지난 8월28일(현지시간) 자카르타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시위에 나타난 한 여성 때문이다. 분홍색 히잡을 쓴 이 여성은 무장한 경찰이 시위대를 밀치자 이들 앞으로 다가가 대나무 막대기와 인도네시아 국기를 휘두르며 저항했다. 이 모습은 용기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분홍색은 올해 인도네시아 시위의 상징색이 됐다.

SNS에는 한글 암호도 등장했다. 인도네시아 청년들은 정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옮겨 적은 문장으로 소통했다. 여러 누리꾼은 정부를 향해 “팅갈 민따 마앞 트루스 등으린 락얏 아파 수샇냐”라고 적었다. 이는 인도네시아어로 ‘그냥 사과하고 국민 말 좀 들으면 되는데 그게 뭐 그리 어렵나’라는 뜻이다.

일본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해적 깃발도 인도네시아 시위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부패한 세력과 싸우기 위해 모험하는 만화 주인공 루피는 배에 이 깃발을 꽂고 다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해적 깃발이 지난 7월부터 사용됐다. 시민들은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독립기념일(8월17일)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국기 게양을 강요하자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반발하기 위해 해적 깃발을 대신 내걸었다. 지난 8월 국회의원 주택수당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에서도 해적 깃발을 들고나왔다.

해적 깃발 시위는 필리핀 시위 현장으로 번졌다. 검은색 옷을 입은 시위대는 지난달 2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해적 깃발을 흔들며 경찰과 대치했다.

필리핀 청년들은 시위 현장에서 악어 모형을 꺼내 들기도 했다. 시위대는 지난달 21일 필리핀 다바오시에서 약 5m 길이의 초대형 악어 모양 케이크와 ‘레촌 부와야’라고 불리는 구운 악어 고기 등을 나눠 먹었다. 악어 모양의 인형을 들고 오거나 악어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악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부패한 정치인’을 상징한다.

필리핀 정부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은 3년간 6160억필리핀페소(약 15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홍수 기반시설에 투입했지만 일부 시설은 부실 시공되거나 착공이 이뤄지지 않았다. 외신들은 탐욕스럽게 입을 벌리고 있는 악어 모형이 홍수 대응 예산을 횡령해 젊은이들의 미래를 집어삼키는 정치인과 사업가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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