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ㅊ. 한글 자모의 열 번째 글자. 치읓이라 이르며, 목젖으로 콧길을 막고 혓바닥을 경구개에 대어 날숨을 막았다가 터뜨릴 때 마찰이 동반되며 거세게 나는 소리다. 치읓은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추위를 만드는 닿소리. 치읓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출렁이는 마음이 어떻게 세상에 닻을 내렸겠나. 치카치카, 아침마다 칫솔질해서 말과 밥이 범한 거친 입을 개운하게 청소하겠나. 저만치 피어 있는 진달래 곁을 떠나 초록의 물결 걷히자 들이치는 인생의 친척들.
아, 치읓이 없었더라면 멀리서 친구가 찾아올 수 있으랴.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렵고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철가 눈대목을 들을 수 있겠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의 애국가 후렴구를 제창할 수 있으랴. 이제 꽃봉오리의 벅찬 마음도 지나 최소한으로 산다. 약방의 감초처럼 있어야 할 데마다 꼭 있는 치읓.
암소 끌던 노인은 삼척 어느 절벽에서 척촉(철쭉)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치며 헌화가를 불렀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글맞춤법도 제정하였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은 가을로 가득 찬 밤. 치읓이 제 위치를 차지한 덕분이다.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공책이라. 치읓이 없다면 책가방도 책방도 있을 수 없다. 번개 앞에서 용감한 피뢰침 같은 시 한 구절은 어디에? 마음의 상처와 함께 태운 낙엽 한 장의 추억은 누구와? 초침이 더듬더듬 진출하는 가운데 치읓의 뗏목을 타고 축하의 박수를 치네. 촛불 끄면 나타나는 흰 연기는 첫돌 때 잡았던 실 같은 초대 손님. 이 모두 치읓 있음에.
항구를 떠나는 배, 치읓이 아니라면 어떻게 뱃고동 울리며 출항할 수 있겠나. 오늘 떠오른 태양이 이 초목의 떨림에 참석할 수 있겠나. 입추, 처서 지나고 추분, 한로 따라 낙목한천 추위가 온다. 하늘의 햇볕정책인가. 월백설백천지백하니 사람도 강아지도 천하 밖으로 나간다. 거추장스러운 머리털 깎고 차분한 마음으로 을사년 추석을 보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길은 햇빛이 되는 것. 혼자 도착하지 않는 기차처럼, 아, 정말 치읓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