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총지출에서 법적으로 지급 의무가 있는 의무지출 비중이 4년 뒤 56%에 육박하게 된다.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사회보험 지출 증가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율도 40년 뒤 4분의 1에 달할 전망이다. 의무지출은 법률에 따라 지출의무가 발생하고 법령에 따라 지출규모가 결정되는 법정지출 및 이자지출의 합계를 의미한다.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반영한 올해 의무지출은 364조 8000억 원으로 재정지출(703조 3000억 원)의 51.9%, GDP의 13.7%였다.


5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운용계획(2025~2029년)에 따르면 정부의 의무지출은 본예산 기준 올해 365조 원에서 2029년 465조 7000억 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4년 만에 100조 7000억 원이 증가하는 셈이다. 이 기간 연평균 의무지출 증가율이 6.3%에 이르러 재량지출 증가율(4.6%)을 크게 웃돌게 된다. 기재부는 “의무지출의 비중·규모 확대는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4대 공적연금 및 기초연금의 수급자 증가 및 수급액 인상, 국가채무 확대에 따른 이자지출 증가, 그리고 사회적약자 지원 강화에 따른 복지분야 법정지출 증가 등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유형별로는 기초생활보장 급여(생계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의료급여, 해산·장제급여)에 대한 국가부담액이 2025년 20조 4000억 원에서 2029년 26조 3000억 원으로 연평균 6.5%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기준중위소득 인상 추이, 의료급여 진료비 확대,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 기초생활보장 제도 개선 과제를 고려한 추계다.
건강보험 관련 의무지출은 2025년 13조 6000억 원에서 2029년 15조 6000억 원으로 연평균 3.4% 증가한다. 노령·유족·장애연금 및 반환일시금으로 구성되는 국민연금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2025년 48조 4000억 원에서 2029년 68조 3000억 원으로 연평균 9.0% 늘어날 것으로 봤다.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기준 하위 70%에게 매월 일정액의 급여액(올해 월 34만 2510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올해 21조 8000억 원(국비 기준)에서 노인인구 증가, 물가 상승, 부부감액 제도 개선 등에 따라 4년간 연평균 6.7% 증가해 2029년 28조 2000억 원으로 예상된다. 2024년 이후 출산율 반등 추세, 지급연령 단계적 상향 계획 등을 고려한 아동수당은 올해 2조 원에서 2029년 3조 원으로 연평균 11.4% 증가한다는 계산이다.
복지분야 법정지출 외에 지방이전재원 규모는 세입 증가 등에 따라 연평균 5% 증가한 2029년 173조 3000억 원으로 예상된다. 이자지출은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적자성 채무 증가 등의 영향으로 연평균 9.1% 늘며 내년 30조 원, 2029년 40조 원의 고지를 차례로 돌파하게 된다.
강희우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2027년부터 국세수입 전체 규모가 의무지출보다 작아져 재정운용상 제약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저출산·고령화의 파고…지연된 구조개혁이 불러온 참사
문제는 상황이 이런데도 재량지출과 달리 의무지출에 제대로 손조차 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낭비성·관행적 재량지출은 과감히 구조조정하고 의무지출도 경제·사회구조 변화를 감안해 제도를 개편하거나 지출누수를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재량지출은 성과가 미흡함에도 관행적으로 지원해 온 사업은 과감히 폐지했다”며 “또 산재돼 있는 소규모 낭비성 지출까지 철저하게 점검해 성과 중심으로 개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직적 성격이 강한 의무지출의 수급 대상 현실화 등을 통해 취약계층에게 지원이 보다 집중될 수 있도록 제도를 효율화하고 반복적·부정 수급 등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정비도 병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실제 내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없애거나 깎은 27조 원 중 재량지출은 25조 원이고 의무지출은 2조 원에 불과했다.
의무지출 구조조정은 후순위에 밀렸다는 비판을 의식한듯 기재부는 지난달 25일 임기근 2차관 주재로 재정구조 혁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재량지출뿐 아니라 의무지출에 대해서도 추가 제도개선 여지가 없는지 적극 점검하겠다”고 예고했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과다하게 산정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같은 의무지출을 합리화해야 한다”고 했다.

"고령화 대응, 연금제도 개편 등 중요"…IMF의 제언
대내외 기관들은 이제라도 연금 등 구조개혁 작업 역시 서두를 때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과의 연례협의에서 “고령화로 인한 장기 지출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구조적인 재정개혁, 즉 연금제도 개편, 재정수입 조성, 지출효율성 향상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3월 ‘내는 돈’인 보험료율(9→13%)과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40→43%)을 높이면서 기금 고갈 시점을 8년 연장(2056→2064년) 시킨 국민연금의 구조개혁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자는 2172만 777명에 그쳤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2022년 말 2249만 7819명을 정점으로 2년 연속 줄었고 올 상반기에도 감소세가 이어진 것이다. 가입자가 줄고 있는 데 반해 수급 연령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다. 올 6월 말 기준 수급자는 747만 7660명으로 반년 사이 10만 5621명 증가했다.
당장 내년 적자 전환 위기에 놓인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건강보험은 각각 향후 5년과 8년을 버티지 못하고 준비금이 고갈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생산연령인구는 올해 3591만 명에서 2065년 1864만 명으로 반토막 나고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3%에서 46.6%로 2배 이상 급증하기 때문이다.

이에 IMF는 “점진적인 가계부채 축소,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 인구구조 변화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서비스 수출의 발전을 지원하고 혁신 및 인공지능 (AI) 대전환 활용하며 수출시장 및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정책은 대외 수요의 복원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KDI 또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를 완화하기 위해 일가정 양립, 고령층 경제활동 촉진, 노동시장 개방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정규직 근로자 과보호, 노동시간 규제 등을 완화함으로써 인적자원을 유연하게 효율적으로 재배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며 퇴직후 재고용 등 근로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외국인 노동자 수용을 통해 생산연령인구 감소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라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