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인터넷신문]추석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고향을 찾고, 정겨운 음식을 나누며 마음을 나눈다. 선물 꾸러미에는 배, 사과, 한우 등 각종 특산물이 들어가는데 홍어도 마찬가지여서 나주의 홍어 전문점들 또한 추석 명절을 앞두고 바쁜 풍경이다. 아마도 남도 고향의 맛을 느끼고자, 혹은 진한 발효의 매력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홍어는 전라도 음식 문화에서 나주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존재이다. 삭힌 홍어는 그 향과 맛이 워낙 강렬해 호불호가 분명하다. 그러나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중독성은 여느 음식과 비교할 수 없다. 이 독특한 세계는 단순히 발효 음식의 차원을 넘어, 한국인의 식문화와 정신을 상징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홍어의 맛을 국악의 음색과 장단에 빗대어 설명하면, 그 강렬함과 여운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홍어 특유의 강렬한 향은 국악의 탁(濁)에 해당한다. 홍어를 처음 마주하면 암모니아 발효에서 비롯된 강한 향이 코를 찌른다. 이 향은 서양 음식의 치즈나 내장 발효 음식과는 또 다른, 독자적인 결을 가진다. 국악에서 탁은 흐리고 무겁고, 단번에 청명함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무게감이 음악의 깊이를 만든다. 홍어 향의 첫인상도 마찬가지다. 거부감을 줄 수 있지만, 이 무게가 오히려 깊은 맛의 전주곡이 된다.
한 입을 베어 물면, 혀끝을 자극하는 매운 기운이 치고 올라온다. 이는 국악의 휘모리 장단과 같다. 휘모리는 빠르고 경쾌하며, 청중의 호흡을 단숨에 끌어당긴다. 홍어의 알싸한 자극은 순간적으로 입안을 점령하고,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이 짧고 강렬한 타격은 홍어 맛의 첫 번째 절정이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것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입안에 퍼지는 은근한 감칠맛이다. 이는 국악의 시김새와 대응된다. 시김새는 소리를 꺾고 흔들며, 단조로운 선율을 풍부하게 만든다. 홍어의 맛 또한 처음의 강렬함 뒤에 미묘한 단맛과 고소함이 깃든다. 삭힘이 깊을수록 그 여운은 더 길고 풍성하다. 이는 시김새의 섬세한 꾸밈음이 연주에 입체감을 불어넣듯, 홍어의 은근한 맛이 강렬한 향과 자극 뒤를 풍성하게 채우는 것이다.
홍어는 보통 삼합으로 즐긴다. 묵직한 삶은 돼지고기와 새콤한 묵은 김치, 그리고 홍어가 어우러진다. 이 조합은 국악의 합주와 같다. 피리, 대금, 거문고, 장구가 서로 다른 음색을 내되, 결국 하나의 곡으로 완성되는 합주처럼, 홍어 삼합은 서로 다른 맛의 층위가 하나로 만나 새로운 조화를 이룬다. 홍어의 자극은 돼지고기의 구수함으로 완화되고, 김치의 산미는 맛의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 준다. 합주가 각 악기의 독립성을 살리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만들어 내듯, 삼합은 각 재료가 자기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완전한 맛을 완성한다.
홍어는 숙성 정도에 따라 맛의 장단이 달라진다. 덜 삭힌 홍어는 상대적으로 담백하고 가벼워 중모리의 안정감에 비유할 수 있다. 잘 삭아 강렬한 풍미를 발산하는 홍어는 느리고 장중한 진양조의 울림과 가깝다. 시간이 길수록 소리가 깊어지듯, 숙성된 홍어의 맛도 시간이 만든 무게감을 전한다.
홍어를 먹은 뒤 코와 목으로 퍼져 나가는 잔향은 국악의 여운과 같다. 악기의 소리가 끝난 뒤에도 귀에 맴도는 울림이 있듯, 홍어의 향과 맛은 식사를 마친 후에도 한동안 몸속에 남아 있다. 어떤 이는 이 여운을 불편해하지만, 또 다른 이는 바로 이 강렬한 지속성을 홍어의 진정한 매력이라 말한다. 이는 국악의 긴 호흡과 닮아 있다. 순간의 쾌락이 아니라, 오래 남는 깊은 감흥을 주는 것이다.
나주 홍어의 맛은 이와 같이 국악의 다양한 용어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향은 탁, 자극은 휘모리, 은근한 풍미는 시김새, 삼합은 합주, 숙성 단계는 중모리와 진양조, 그리고 여운은 잔향이다. 결국 홍어를 맛본다는 것은 단순히 발효 어류를 먹는 경험이 아니라, 한 편의 국악을 감상하는 일과 같다. 맛과 소리가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같은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다.
홍어를 두고 누군가는 혀를 찌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감탄한다. 국악 역시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설고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귀를 열고 마음을 기울이면, 그 속에서 한국인의 정서와 역사가 들려온다. 마찬가지로 홍어도 향과 맛의 강렬함 뒤에 한국인의 삶과 지혜가 숨어 있다. 나주의 홍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발효와 시간, 그리고 공감의 미학이자 국악적 울림을 지닌 문화 그 자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3. 나주 홍어, 미래 무형유산으로 육성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3-05-31).
허북구. 2023. 나주 홍어, 무형문화재 지정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3-03-14).
허북구. 2022. 호남선의 홍어와 전라선의 간재미. 전남인터넷신문 나주음식문화(2022-10-13).
허북구. 2021. 나주 홍어 라면의 여행 상품 가능성. 전남인터넷신문 나주문화들춰보기(2021-06-02).
허북구. 2020. 라면 여행과 광양 매실라면, 나주 홍어라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0-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