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주자 탐구
대선주자 탐구-전라도의 ‘경상도 사위’들
올 것이 왔다. 그의 고향은 산으로 둘러싸인 경상도의 작은 마을이었다. 지역감정에 도농 격차가 있겠냐만, 그래도 나름대로 양반의 후손임을 자부하던 그 고향 마을 어른들 사이에서는 그의 결혼을 썩 내키지 않아 하는 기색이 제법 감지됐다. 그중에서도 작은아버지의 낯빛은 아주 어두운 편이었다.
그 동네에서 거의 유일무이했던 명문대 진학자로, 가문과 문중의 영광으로 지목됐던 조카가 어느 날 난데없이 호남 처녀를 데리고 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1980년대의 그 영남 시골에서 썩 환영받지 못할 처사였다. 모두가 입술을 달싹거리면서도 차마 꺼내지 못했던 그 말을 작은아버지가 결국 입 밖에 꺼냈다.
‘내가 여러 번 퇴짜 맞은 끝에 간신히 애걸복걸해서 하는 결혼이라는 걸 알면 뒤로 넘어지시겠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뇌리에는 바로 그 퇴짜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쳐갔다.
대선주자 중에는 영남 출신이면서 호남 출신 부인을 만난 이가 적지 않다. 영호남의 결합이 더는 특이할 것 없는 요즘이지만 이들의 결혼적령기 때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지역감정이 하늘을 찌를 때라 애초에 서로 경계하거나 집안이 반대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그런 장애물을 뛰어넘어 전라도 출신 부인과 결혼한 경상도 출신 대선 주자는 모두 세 명이다. 따옴표를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모두 말이 되는 호남의 영남 사위 또는 영남의 호남 사위 사연들을 살펴보자.
서두에 언급한 이는 그중 누구였을까. 그가 줄줄이 퇴짜를 맞았던 사연부터 시작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