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등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선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탄소배출권거래제를 두고 집중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탄소배출권거래제는 각 기업에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배출권을 무상 또는 유상(경매)으로 할당하고, 이를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2015년 도입돼 올해로 1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격이 낮고 거래가 부진해 탄소 감축 유인이라는 정책 목표를 전혀 달성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세액공제율 적용 기준을 현재 대기업, 중소기업 등 기업 규모에서 탄소 배출 감축 기여도로 전환해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기술 개발과 감축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한다.
20대 국회의원 출신으로 현재 지속가능발전 연구기관인 이로움재단에서 활동하는 채이배 상임이사는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현재 4%에 불과한 유상할당 비율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기업들의 탄소 배출 감축을 유인하려면 현재 대부분 무상으로 공급되는 탄소배출권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 이사는 “온실가스 최대 배출원인 발전 분야부터 유상할당 비율을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100%로 늘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시멘트 등도 주요 다배출 업종이지만 수출 가격경쟁력 문제가 있다. 발전은 수출과 무관하기에 해외에서도 발전 분야부터 유상할당을 강화했다”라고 말했다.
채 이사는 유상할당 확대가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산업 부문과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대응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한편으로 전기요금 상승이 기업의 탄소 감축 노력을 유발하는 간접적 요인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확대 등 탄소 배출 감축을 유도할 ‘채찍’과 함께 ‘당근’도 필요하다고 했다. 채 이사는 “세액공제율 적용 기준을 현재 대기업, 중소기업 등 기업 규모에서 탄소 배출 감축 기여도로 전환해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기술 개발과 감축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 12일 채이배 이사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탄소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탄소배출권거래제의 핵심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감축 유도다. 이론상 감축을 많이 한 기업은 여유분 배출권을 팔아 수익을 얻고 감축이 어려운 기업은 이를 구입해 부족분을 메우게 된다. 배출권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며 가격이 오를수록 기업은 더 적극적으로 감축에 나선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국내 배출권 가격은 2025년 7월 기준 1t당 약 8600원으로, 약 10만원에 달하는 유럽연합(EU)과 비교할 때 크게 낮은 수준이다. 가격이 낮으니 감축 유인도 사라진다. 제도의 기본 취지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원인은 무엇인가.
“공급 과잉이다.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해야 한다. 이 과정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2027년까지는 배출량이 거의 줄지 않다가 이후 급격히 감축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그러다 보니 배출 총량을 과도하게 허용했고, 기업에는 배출권을 대부분 무상으로 할당했다. 여기에 더해 제도 초기에 시장 안정을 위해 배출권 이월에 제한을 두면서 공급이 더 증가했다. 시장 내 공급량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시장 참여자는 적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져버렸다.”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유상할당을 확대해야 한다. 우선 발전 부문에 대해 2030년까지 연도별로 20%포인트씩 높여 5년에 걸쳐 100%로 상향해야 한다. 1차 계획기간(2015~2017)에는 배출권의 100%를 무상으로 할당했고, 2차 계획기간(2018~2020)부터 유상할당이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3차 계획기간(2021~2025)에도 유상할당 비중 목표는 10%에 불과하다. 그것도 실질적으로 4%밖에 안 된다.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유상할당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철강, 석유화학 등 다배출 업종은 여전히 100% 무상할당이다. EU의 경우 유상할당 비율이 발전 부문은 100%, 산업 부문은 70%(2034년까지 100% 계획)이고, 미국 캘리포니아도 발전 부문은 100%다. 정부도 지난해 12월 4차 계획을 발표하면서 유상할당 비율을 올리겠다고 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수치는 내놓지 않고 있다.”
-왜 발전 분야부터 유상할당을 확대해야 하는가.
“발전 분야가 온실가스 최대 배출원이다. 물론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시멘트 등도 주요 다배출 업종이다. 유상할당을 강화하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 그러나 발전은 수출과 무관하다. 다른 업종은 가격경쟁력을 이유로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수 있지만, 발전은 국내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해외도 발전 분야부터 유상할당을 강화하고 이후 산업 부문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
-발전 분야 유상할당 확대는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전기요금 상승은 불가피하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산업 부문의 경쟁력 저하와 가계 부문의 부담 증가 등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해 면밀히 살피고, 산업 부문과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대응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전기요금 상승은 기업의 탄소 감축 노력을 유발하는 간접적 유인이 될 수 있다. 또 지금까지는 전기요금을 물가 관리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인위적으로 억제해왔으나 이로 인해 오히려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계층일수록 더 큰 혜택을 받는 구조가 고착됐다. 이는 형평성 문제가 있기에 에너지 고소비 계층에게는 적절한 부담을 지우고 에너지 취약계층에게는 바우처와 같은 타깃형 지원이 필요하다. 발전 분야 유상할당 비율이 2030년까지 100%에 도달하면 배출권 가격 상승과 맞물려 연간 경매수입이 최대 13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재원은 민간의 온실가스 감축 사업 지원이나 에너지 바우처 등의 재정기반이 될 수 있다.”
-탄소배출권거래제가 중요한 이유는.
“탄소 배출의 책임이 가장 큰 경제 주체는 기업이며 탄소배출권거래제를 통해 기업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행동 변화를 위해선 ‘채찍’ 외에도 ‘당근’이 필요하다. 탄소배출권거래제가 ‘채찍’이라면 조세지원이라는 ‘당근’도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는 기업의 연구개발(R&D) 및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제도가 있다. 특히 신성장 원천기술 및 국가전략기술에 해당하는 연구개발비에는 20~50% 수준의 고율 공제가 제공된다. 그러나 여기에 기후위기 대응 기술은 2차 전지와 수소에 국한돼 있다. 반면 미국이나 EU는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히트펌프), 배터리 저장장치, 탄소포집·저장(CCS) 등 기후위기 대응 핵심기술에 과감한 세액공제를 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세액공제제도는 기업들의 기후위기 대응 기술개발과 투자 유인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 또 현재 세액공제제도는 기업 규모에 따라 공제율을 차등 적용해 중소기업에 더 고율의 세액공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탄소 배출은 대부분 대기업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감축을 위해서는 이들 기업의 기술 개발과 설비투자가 절실하다. 따라서 공제율 적용 기준을 기업 규모에서 탄소 배출 감축 기여도로 전환해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기술 개발과 감축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한다.”
-대기업 특혜라는 우려가 있을 텐데.
“탄소 감축을 위한 조세정책은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의 세액공제는 개발 시대 산업 육성을 목표로 한 전통적 조세 지원 구조에 기반해 설계됐으나, 이제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정책 목표에 맞게 전환해야 한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