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경향] 지난 8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3시간 앞두고 별안간 SNS에 글을 올렸다. “한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숙청 또는 혁명처럼 보인다. 우리는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 짧은 시간 동안 무수한 해석이 쏟아졌다. 국민의힘에서는 ‘숙청’에 특검 수사를, ‘혁명’과 ‘사업을 할 수 없다’에는 노란봉투법을 연관 짓는 해석이 나왔다. 물론 이 해프닝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해라고 확신한다”고 번복하면서 일단락됐다.
짧은 해프닝이지만 생각해볼 건 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은 과연 혁명과 짝을 이룰 만한 입법인가. 한국을 사업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아니다. 노란봉투법은 법 공백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 쌓이고 있던 ‘원청 회사는 근로조건에 관해 하청 노동자들과 대화해야 한다’는 판례를 뒤늦게 법에 반영한 것에 가깝다. 입법 부작위를 개선한 것을 혁명이랄 수는 없다. 6개월 뒤 법이 시행에 들어가도 당장 원·하청 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라 보긴 어렵다. 많은 하청 노동자가 노란봉투법에도 불구하고 원청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8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일하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이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할 길을 열었고, 기업이 노조 활동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했다. 헌법과 노동조합법에 이미 적혀 있는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지만, 그간 한국사회에는 이 권리가 없는 사람이 많았다. 대표적인 이들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이른바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이다. 외환위기 전후 외주화 광풍 속에 등장한 이들은 정규직과 비교해 고용은 불안정했고, 임금은 크게 적었다. 더 문제는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도 없었다는 점이다. 노조를 만들어 처우를 개선해온 정규직 노동자들과 달리, 이들은 고용이 불안정하니 노조를 만들 수 없었고, 어렵사리 노조를 만들어도 ‘진짜 사장’인 원청과 협상할 수 없었다.
예컨대 HD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이하 사내하청지회)’는 올해 초부터 6개 하청업체와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240여개의 사내하청업체, 약 2만명의 하청 노동자가 일하는데,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한 하청 노동자는 전체의 1% 미만이다. 원청도 아닌 하청업체와의 교섭이지만, 이런 교섭 자체가 9년 만이다. 이병락 사내하청지회장은 “교섭을 요청하면 조합원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교섭 요청 후에 하청업체가 폐업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조합원들에게 ‘교섭 넣어도 되는지’ 물으면 ‘안 된다’고 한다”고 했다. 현재의 교섭도 난항을 겪고 있다. 사내하청지회의 요구는 일일 노동시간 기준을 현행 9시간에서 8시간으로 바꾸고, 여름휴가를 보장하며, 경조사 휴일을 정규직과 동일하게 보장하라는 것 등이다. 이병락 지회장은 “노동자들의 요구는 딱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섭은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 공전 중이다.
난항의 이유는 하청업체에 실권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 자동차 제조사의 하청업체 노조는 겨울에 탈의실 난방기가 고장 나 옷을 갈아입기 힘들다며 하청업체에 난방기 교체를 요구했다. 돌아온 답변은 ‘원청 승인을 받아야 한다’였다. ‘바지사장’인 하청업체에 실제 결정권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원·하청 관계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뭉개는 구조적인 핑곗거리기도 했다. 실질적인 결정권이 있는 원청은 하청 노동자는 하청 소속이라며 교섭을 거부했다. 정규직·비정규직의 격차가 나날이 커지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굳어진 배경이다.
헌법상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채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입법부는 몇 차례 군불만 때고 노란봉투법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 때 비로소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대통령이 두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사이 진전을 만든 건 끊임 없이 권리를 위해 싸운 하청 노동자들과 몇몇 사건에서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한 법원이었다.
“하청업체 근로자는 하청업체와의 단체교섭만으로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청 근로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아 이익을 향유하는 원청에 대해 그 권한에 상응하는 집단적 노사관계상의 책임이 인정될 필요가 있다.” 노조 측의 일방 주장이 아니다. 하청 노동자들과의 교섭을 거부한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사건에서 ‘원청이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판단한 서울행정법원 판결문 내용이다. CJ대한통운·현대제철 사건에서도 동일한 취지의 법원 판단이 나왔다. 노동시장의 변화하는 추세를 반영해 법원 판단도 달라진 것이다. 간접고용, 플랫폼 노동자처럼 원청 회사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도 실질적으로는 원청에 의해 일하는 방식이 결정되는 이들이 많아졌다. 법원은 싼값에 하청 노동자를 쓰는 원청이 노사 협상의 파트너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봤다.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자가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노란봉투법 규정은 개혁 입법이라기보다, 법원 판단을 뒤늦게 반영한 후행 입법에 가깝다. 물론 노란봉투법은 회사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노조 활동의 범위를 넓히는 등 노동권 보장에 있어 진전된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이는 손해배상을 노조 활동을 봉쇄하는 전가의 보도로 활용해왔던 한국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 해외 주요국은 노조의 쟁의행위 등을 이유로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간 한국 기업들은 기업의 불법 행위에 대항한 노조 활동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해왔다. 예컨대 현대제철은 이미 불법 파견 판단을 받은 하청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벌이자 24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당시 현대제철은 고용노동부의 불법 파견 시정 명령에도,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노사 극한대립의 단초를 원청이 제공하고도 손해배상을 청구해 노조에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기업의 이 같은 행위를 차단하고 원·하청 노사 관계를 제도화함으로써,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유인을 높이는 측면이 있다.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노사 관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하나의 시스템인데 그간에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비제도적인 방법으로 갈등이 분출해왔다. 원청과 하청 노동자 간 교섭 길이 열리면, 갈등을 조정하는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다”고 했다.
노란봉투법이 “시장경제 질서를 파괴”하리라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6개월 뒤 법 시행으로 당장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 보는 하청 노동자는 많지 않다. 하청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은 일단 자신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결정하는 사용자’인지 법적으로 따져볼 공산이 크다. 택배노조는 2018년부터 CJ대한통운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는데, CJ대한통운이 노동위원회와 1·2심 판단에 불복하면서 사건은 여전히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나아가 의제별로도 법적 판단을 받아보려 할 가능성이 크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2022년 성과급 지급, 학자금 지급, 노조 활동 보장, 산업안전, 취업 방해 금지 등을 두고 원청 한화오션에 교섭을 요청했다. 원청이 거부하면서 결국 사건이 법원으로 갔는데, 행정법원은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노조 활동 보장과 취업 방해 금지 등 의제에 있어서는 원청이 교섭 상대방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건건이 법원 판단을 받으려 하면 원·하청 교섭은 제도로만 존재하는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법 시행 전까지 6개월간 사용자 판단 기준, 노동쟁의 범위 등 구체적 지침을 마련키로 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기존에 나온 판례들을 법제화한 측면이 있다. 법제화가 되면 사법부에만 맡겨져 있던 것을 행정이나 정책 영역에서도 적극 대응하며 논의가 진전될 여지가 생긴다. 행정기관이 만들어진 법을 어떻게 해석해 지침을 만들고, 어떻게 행정조치를 하느냐에 따라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