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40여일 앞두고 중국이 적절한 수준에서 돈을 풀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고율의 관세 등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에 대비해 경제적인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10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전날 중국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정치국(24명의 중국공산당 지휘부)이 내년 경제 정책을 논의하고 통화정책의 경우 '안정'에서 '적절한 완화'로, 재정정책은 '적극'에서 '한층 적극'으로 기조를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는 통화 공급과 재정 지출을 동시에 늘리는 '준(準) 양적 완화'에 해당한다.
정치국회의는 또 "국내 수요를 확대하고, 부동산과 증시를 안정시키며, 중점 영역의 리스크와 외부 충격을 방지·완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런 결정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선 "중국 내 경기 위축,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한 고관세 등 안팎의 충격에 대비한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중국이 통화정책에서 '적절한 완화' 기조를 채택한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당국이 경기 부양에 나섰던 2009~2010년 이후 처음이다. 중국은 2011년부터는 중립에 가까운 ‘안정’ 기조를 14년간 유지해왔다.
롄핑(連平) 광카이수석산업연구원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0년간 중국의 통화정책은 '긴축' '적절한 긴축' '안정' '적절한 완화' '완화' 등 5단계로 구분된다"며 "객관적인 정세 변화에 따라 '안정'을 중심으로 긴축과 완화 사이에서 유연하게 조절하며 경제 안정을 유지해왔다"고 경제지 차이신에 설명했다.
이같은 기조 변화를 두고 "2008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유동성 공급을 확대했던 양적 완화를 참고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트럼프 쇼크에 대비해 내수 진작에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5% 성장을 낙관했다. 그러면서도 고난이 여러 해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함께 내놨다.
시장은 이같은 결정을 반기는 모습이다. 홍콩 항셍지수는 전날 정치국회의 소식에 2.8% 상승하며 마감했는데, 항셍 중국기업 지수는 3.14%로 상승폭이 더 컸다.
다만 이날 시장이 기대했던 구체적인 내수 부양책은 나오지 않았다. 이날 정치국회의에서 논의한 거시 기조는 11~12일로 보도된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확정한 뒤 트럼프 취임 이후인 내년 3월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성장률 목표 수치와 함께 발표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내수 진작의 핵심인 부동산과 증시의 안정을 꼬집어 언급했지만, 지난 9월 회의보다 표현의 추상성이 높아졌다"며 "곧 열릴 중앙경제공작회의와 내년 3월 전인대에서 제시되는 구체적인 수치와 내수 부양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