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고 누수를 막아왔던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문턱이 낮아진다. 1999년 도입 이후 26년 만이다. 기획재정부는 14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타 대상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국가 재정지원 300억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000억원·재정지원 500억원 이상’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예타는 SOC 건설이나 국가연구개발 등 대형 공공투자 사업의 경제성과 사업성을 검토해 시행 여부를 판단한다. 대규모 개발사업의 우선순위와 적정 투자 시기, 재원 조달 방법 등을 따져 선심성 사업을 막는 견제 장치 역할을 담당해 왔다.

정부가 예타 기준을 낮추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지역 균형 발전이다. 인프라 개발 등이 수도권에 편중되면서 생기는 국토 개발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정부가 나서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도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예타 기준도 조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공사비 급등과 물가 상승분 등을 반영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예타 문턱이 낮아지며 걱정도 크다.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가 기승을 부릴 수 있어서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경제성을 무시한 채 표심을 겨냥한 선심성 사업이 남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연속 세수 부진에 대통령이 재정 지출 구조조정까지 강조하고 나설 만큼 나라 곳간 사정은 여의치 않다.
예타 기준이 헐거워졌다고 사람도 안 다니는 도로를 놓고, 고추 말리는 공항을 짓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마구잡이로 쓰는 돈도 결국은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