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정부 국정기획위원회가 어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내놨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국가 비전으로 삼고 123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소요되는 210조원은 세입 확충(94조원)과 지출 절감(116조원)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210조원은 올해 예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세수 부족으로 매년 적자 국채를 발행하고 있는데 정부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같은 대규모 현금성 지원을 선호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어제 ‘나라 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국가재정 여력이 너무 취약해져서 씨 뿌릴 씨앗조차도 부족한 상황이 됐다”면서도 “지금 씨를 한 됫박 뿌려서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적극적인 재정 확대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그런데도 국정과제 이행 과정에서 추가적인 재정 부담은 없다고 하니 선뜻 믿기 어렵다. 현금 살포식 선심 정책은 최대한 절제하고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을 마련해 나랏빚이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23개에 이르는 국정과제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현 가능한 과제에 집중하지 않으면 장밋빛 전망에 그칠 수 있다. 윤석열, 문재인정부도 각각 110개, 100개의 백화점식 국정과제를 발표했지만, 태반이 온전히 이행되지 않았다. 경제 분야의 핵심 과제로는 ‘코스피 5000시대 도약’과 ‘AI 3대 강국 도약’이 눈에 띈다. 두 과제의 주역은 기업인데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노란봉투법’이나 상법 개정 같은 반시장·반기업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으니 구호 따로 행동 따로다. 이래선 국정과제가 말 잔치로 끝날 수 있다.
계엄과 탄핵을 거쳐 탄생한 ‘국민주권정부’답게 국정과제에는 각 분야의 개혁 과제가 망라됐다. 검찰과 경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의 집중된 권한을 줄이고 군의 정치적 개입을 방지하는 과제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권력기관 개혁이 박수를 받으려면 이들 기관이 권력에서 독립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편익을 키우는 방식이어야 한다. 여론과 전문가의 견해를 충분히 듣고 신중하게 추진하길 바란다. 정부 조직개편 방향은 대통령실에 보고됐지만, 국정과제 발표에서는 빠졌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부처 간 줄다리기 등으로 개편 논의가 답보 상태라고 한다. 관련 부처 수장 인사가 지연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다. 조속히 확정해서 공직 사회를 안정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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