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흥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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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다양한 사상이 혼재돼 있었다. 그중 양주(楊朱)와 묵자(墨子)의 사상이 특히 널리 퍼져있었는데, 맹자는 이 두 사상이 유행하면 사회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사상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도 흡사한 점이 많다.
다음은 도가 경전인 ‘열자’에 나오는 양주에 관한 얘기이다.
금자라는 사람이 양주를 찾아와 당신이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지 물었다. 이에 양주는 머리카락 한 올로는 천하를 구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금자는 재차 물었고, 귀찮아진 양주는 말도 없이 자리를 떠버렸다.
만약 털 하나가 쌓여서 살이 되고 살이 쌓여서 다리가 된다면 털 하나를 가볍게 여기겠는가? 양주는 당시 전형적인 지배층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천하를 편안하게 만든다면서 백성들을 이용해 사익을 챙겼다.
“내가 세상을 바로 잡겠다.”라고 외치던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양주는 이들을 비판하면서도 말 섞기를 피했다. 이는 ‘열자’에 그가 남긴 말로 알 수 있는데, 양주는 “내가 어떻게 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묵자의 경우는 이렇다.
맹자의 표현을 빌리면 묵자를 따르는 자들은 머리부터 발꿈치까지 없어지더라도 그렇게 해서 세상이 이로울 수 있다면 하겠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묵자는 백성을 위한 사상으로 전환했다. 그들은 ‘남의 부모도 내 부모처럼’,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서로 사랑하고 돌보는 공동체적 삶을 추구했다. 이는 겸애(兼愛)의 반대인 별애(別愛)로, 전쟁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며 약자를 돕고 보호했다.
두 사상을 놓고 봤을 때, 양주가 개인주의라면 묵자는 공동체주의이다.
맹자가 소박한 삶을 추구한 점은 양주와 닮았고, 공동체와 민중의 삶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는 묵가(墨家)에 가깝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주장에는 반대였다. 맹자는 나의 아버지와 친구의 아버지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맹자의 삶은 그가 남긴 ‘군자삼락’(君子三樂)을 통해 잘 드러나 있다. 군자삼락의 첫째는 부모·형제가 무탈하고 서로 아끼며 우애롭게 사는 ‘가정의 행복’이다. 집안이 흔들리면 하는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둘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이는 살면서 남을 속이거나 욕심을 부릴 수도 있지만 올바르게 살았기에 우리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모아 가르치는 후배 양성의 즐거움이다. 맹자는 평화로운 세상에는 인재가 필요하다며, 이타심이 있기에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이처럼 맹자의 삶은 외물(外物)에 있지 않았다. 사람들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과정 속 왜 우리가 옛 사람들의 지혜를 배우고 그들의 생각을 되새겨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맹자는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배워야 하는 게 인간답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 곱씹어봐야 할 중요한 가르침이다.
인간은 함께할 때 인간다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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