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진 탄핵 집회 현장을 보면서 민중의 힘으로 역사를 바로 세운 사건이 여럿 떠올랐다. 시민혁명의 전형이 된 프랑스 혁명, 비폭력 저항과 무장투쟁으로 영국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을 이룬 인도 독립운동, 정부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무장투쟁으로 자치권을 확보한 멕시코 원주민들의 치아파스 봉기, 부정선거를 주도한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민주주의 정부 수립한 그루지야 국민의 장미 혁명, 부패한 독재 정권에 맞선 민중들의 대규모 시위로 민주화를 이뤄낸 튀니지 재스민 혁명, 중국 정부의 민주화 탄압에 맞섰던 홍콩 민중들의 우산 혁명….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목숨까지 내놓으며 도시를 끝내 지켜낸 시민들도 있다. 조각가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북부의 작은 항만도시 칼레의 시민들이다.
도버 해협을 끼고 영국을 마주하고 있는 칼레의 역사는 지난 했다. 광석 목재 등의 수입항이자 어항 도시로 발전해왔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영토분쟁에 휩쓸려 큰 수난을 겪어야 했던
칼레는 1337년부터 116년 동안 지속됐던 백년전쟁 초기, 영국군의 공격으로 점령당했다. 칼레의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영국군의 지배를 받아들였으나 저항하는 시민들을 향한 정적 보복이 시작됐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에 칼레의 유지 여섯 명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가장 먼저 나선 이는 칼레의 부자 유스타슈 생 피에르였다. 다른 여섯 명 유지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모두 일곱 명. 그러나 피에르는 혹시 이들의 마음이 바뀔 것을 염려해 교수대에 서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은 여섯 명도 기꺼이(?) 교수대에 섰으나 절명의 순간, 영국 왕비의 간청으로 살아났다. 칼레는 그 뒤 여러 차례 프랑스령과 영국령을 넘나들다가 1558년 프랑스령이 됐다.
칼레시는 1894년, 로댕에게 이들을 기리는 동상 제작을 의뢰했다. 로댕은 ‘칼레의 시민’을 죽음 앞에 두려워하면서도 서로 격려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이 조각상은 당초 시청 광장에 놓여질 예정이었으나 칼레의 한적한 바닷가로 쫓겨(?)나야 했다. 영웅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시민들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조각상이 시청으로 옮겨진 것은 1924년이었다.
대통령 탄핵 집회는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거리에 서는 시민들, 그들 모두가 영웅이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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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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