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비사
제8부. 전두환의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
5회. 당선되자 달라진 노태우와 김옥숙
1987년 12월 16일 대선 투표율은 전무후무한 89.2%를 기록했다.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36.6%를 얻어 당선됐다. 김영삼 후보가 28%, 김대중 후보 27%, 김종필 후보 8.1%. 당선자 노태우는 더 이상 2인자가 아니었다. 전두환은 여전히 자신이 1인자라 생각했다. 노태우는 대선 승리를 자신의 복이라 여겼고, 전두환은 자신의 공이라 생각했다.
5공을 놀라게 한 김옥숙의 ‘진심’ 토로
전두환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여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국민이 정부 여당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서 재신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자신과 5공화국에 대한 국민들의 긍정적 평가가 곧 노태우 승리의 원동력이란 주장이다.
노태우 당선자는 회고록에서 다른 뉘앙스의 기록을 남겼다. ‘밤 10시쯤 되자 1등(노태우)과 2등(김영삼) 표차가 50만 표로 벌어졌다. 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했다. 새벽 5시 TV를 켜니 당선은 확정적이었다. 조상님들과 전두환 대통령, 선거 때 함께 뛰었던 수많은 동지의 얼굴이 떠올랐다.’(노태우 회고록)
독실한 불교신도인 노태우는 다소 운명론적이다. 그는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인파를 보고서도 ‘신의 조화’라고 생각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도움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6·29 선언을 한 바람에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직선제 수용을 거부하는 노태우 후보를 어렵사리 설득했다’는 전두환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전두환 비사 8월 14일, 20일자 참조).
노태우는 또 공조직(민정당)이 아닌 사조직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선기 기간 중 활동한 사조직이 수천 개는 되지 않았나 싶다. 간부들의 열성은 대단했다. 일일이 감사의 뜻을 전하지 못한 것이 늘 미안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가장 큰 사조직은 ‘월계수회’였으며, 이를 조직하고 지휘한 총책임자는 처조카 박철언(당시 안기부장 특보)이었다.
속마음을 감추는 노태우 당선자 대신 본심을 드러낸 사람은 부인 김옥숙 여사였다. 노태우 당선이 확정된 다음 날인 12월 18일 밤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축하차 노태우 당선자 집을 방문했다. 전두환과 노태우 사이에선 의례적인 인사말과 덕담이 오갔다. 그러나 김옥숙과 이순자 여사 간의 내실 대화는 달랐다. 김옥숙이 ‘민정당이 인기가 없어서 우리가 정말 고생 많이 했다’는 본심을 털어놓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