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되는 글이 있다. 정신 버쩍 드는 매운 회초리 같은 글… 예를 들어 이런 말씀.
“우리 손자가 공부허고 있으문 내가 말해. 아가, 공부 많이 하지 마라.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맘 공부를 해야헌다, 사람 공부를 해야헌다, 그러고 말해. 착실허니 살고 넘 속이지 말고 나 뼈 빠지게 벌어묵어라. 넘의 것 돌라 묵을라고 허지 말고, 내 속에 든 것 지킴서 살아라. 사람은 속에 든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벱이니, 내 마음을 지켜야제. 돈 지키느라 애쓰지 말어라.”
〈월간 전라도닷컴〉에 실린 전남 순천 송광면 왕대마을 윤순심 할매의 말씀이다. 그동안 이 잡지에 실린 말씀 중 가장 인기 있는 어록이라고 한다. 〈월간 전라도닷컴〉은 전라남북 방방곡곡 안 가본 촌구석 없이 찾아 헤매며 발로 뛰면서 촌사람들의 생생한 육성을 손으로 받아적어 매달 내는 잡지다. 여기 실린 말씀들은 하나같이 찰지고 맛깔스럽다.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 무법의 시대를 후려치는 죽비소리 아닌가. 이 대목은 조정래의 소설 〈천년의 질문〉 3권에 그대로 인용되어 나온다고 한다. 어느 이름 없는 시골 할머니의 말씀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유식한 사람들의 심장을 찌르는 훈계이자 경고라고 작가는 말한다.
다른 사람은 어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나를 향해 매섭게 떨어지는 회초리 같아서 아프고 부끄러웠다. 물건이나 돈 도둑질은 안 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마음 공부, 사람 공부… 정신이 버쩍 든다.
내 친구는 이 말씀을 읽고 진심 어린 감탄의 글을 보내왔다.
“촌 무지렁이라고 업수이 여겨지는 분들이 실은 참으로 재치있고, 따듯하고, 지혜롭고, 기품 있는 분들임에 감탄했어유. 윤순심 할매의 말씀은 동판에 새겨 서울대 교문 앞에 세웠으면 좋겠구먼.”
한국 사회에서 공부했다는 것은 곧 학교 교육을 말한다. 학벌과 학위만 중요하게 취급한다. 달리 말하면, 가방끈 길이만 따지는 세상이다. 주입식 교육의 지식만 중요하게 여기고, 삶을 통찰하는 지혜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런 교육의 독소가 사회 전반에 지독한 악영향을 미친다. 사회지도층, 이른바 배운 자들이란 학교 다닐만한 환경에서 자라고, 기억력이 좋아서 시험 잘 쳐서 출세한 사람들이다. 당락을 결정하고, 인간 줄 세우기의 기준이 되는 시험 점수는 인간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람다움이나 품격과도 무관하다.
법조인을 예로 들어보자. 법조문 달달 외워서 고시 합격하고, 출세와 벼슬따기에 혈안이 되어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법 기술자’가 되어 개인적으로 돈 많이 벌고 떵떵거릴 수는 있겠지만,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일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헌데,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판, 언론, 경제계, 학계, 문화예술계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비슷한 현실이라는 점이 문제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교묘하게 나쁜 짓을 할 여지가 크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따지는 경제계나 부자들의 문제도 크다.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촌사람들에 한참 못 미친다. 참 답답하다.
세상 탓, 남 탓할 것 없다. 나부터 반성해야 한다. 사람 공부, 마음공부 얼마나 하고 있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윤순심 할머니의 말씀 중 마지막 구절이 특별히 가슴을 때린다.
“사람은 속에 든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벱이니, 내 마음을 지켜야제. 돈 지키느라 애쓰지 말어라.”
장소현 / 시인·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