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적 폭우가 쏟아져 태국 남부에서 최소 170명이 숨진 가운데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피해가 커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태국 시민사회는 재난 책임을 정부에 지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일 태국 일간지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 법률 지원 시민단체 ‘사회정의 회복을 위한 캠페인 재단’ 회장 론나롱 깨우펫 변호사는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지방 정부와 공무원의 과실이나 불법행위를 입증할 수 있다면 대중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론나롱은 피해 지역에서 홍수 경보가 뒤늦게 발령됐다면서 “주 정부 기관이 재난의 심각성을 잘못 판단해 제때 경보를 발령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대비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온다”며 “수문 오작동, 배수 시설 유지 관리 실패, 운하 막힘, 물 펌프 고장 등 수자원 시스템 관리 부실로 인해 해당 지역의 홍수 피해가 악화했다는 증거가 있어도 주 정부를 고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태국 사회에서는 300만 명이 영향받은 폭우 피해가 인재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피해가 가장 심했던 송클라주 핫야이 지방정부는 지난달 24일 오전 10시에 시민들에게 대피 경보를 내렸다. 폭우가 내린 지 6일째 된 날이었다. 경보 발령 전 주민들은 SNS에 ‘집에 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식량과 식수가 필요하다. 3일째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물이 2층까지 차오르고 있는데 어떤 기관에도 연락이 안 된다’ 등 글을 올렸다.
재난 상황을 지휘할 의무가 있었던 엑 영아파이 핫야이 행정책임자는 폭우 기간 근무지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를 포함한 핫야이 지방정부 소속 공무원 두 명은 정직 처분을 받았다.
송클라주도 폭우 피해 상황을 축소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클라주는 폭우 이틀째인 지난달 20일 페이스북에 “6개군, 26개 소군, 144개 마을, 1만6496가구가 피해를 봤다”고 보고하면서도 “현재까지 부상자나 사망자는 없다. 주지사는 모든 지역 행정 기관과 협력해 상황을 자세히 모니터링하고 비상 상황 발생 시 주민들에게 즉각적인 지원을 제공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송클라주가 페이스북에 올린 솜난 부싸이 주지사의 현장 시찰 사진도 논란이 됐다. 솜난 주지사와 보좌진은 사진 속에서 미소를 보이고 있다.

그간 중앙·지방 정부가 홍수 상습 피해 지역인 핫야이의 배수 관리를 부실하게 해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지에 있는 핫야이는 북동 몬순(계절풍)의 영향을 받는데, 이로 인해 이 지역에는 매년 10월부터 12월 사이 폭우가 내렸다. 하지만 배수 시설과 수로가 제대로 유지·보수되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난개발이 홍수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묵인 속에 개발이 진행되면서 물을 빨아들이는 습지와 농지 면적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아누틴 찬위라쿨 태국 총리는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가구당 9000바트(약 41만원)의 지원금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민심은 악화하고 있다. 국립개발행정연구소가 지난달 18일부터 24일까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태국 남부 주민들의 아누틴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 9월 20.44%에서 15.4%로 5.04%포인트 줄었다.
최근 일주일 동안 인도네시아와 태국, 스리랑카 등지에 폭우가 쏟아져 946명 이상이 숨졌다. 믈라카 해협에서 발생한 이례적 열대성 폭풍의 영향이다. 태국에서는 말레이시아 인접 지역에 홍수가 발생해 이날까지 최소 17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