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조의 만사소통]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을 오가며

2025-04-22

감당이 불감당이다. 이번 달에는 돈을 또 얼마나 냈는지. 밀려드는 청첩장과 부고장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제 저녁에는 상갓집에 들렀고 오늘은 결혼식장에 간다. 다음 주에는 경조사가 많아서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스럽다. 다들 인생 중대사이니 어디 한곳 빼먹을 수가 없다. 일정 관리하는 로드 매니저를 둬야 할 판이다.

어느 결혼식장. 또 뷔페야? 누가 좀 갖다주면 안되나? 음식 찾아 삼만리도 힘들지만 뷔페 음식은 자꾸 먹게 된다. 음식을 보면 욕심이 난다. 돼지 되기 십상이다. 우아하게 앉아서 서빙받으며 먹었으면 좋겠는데. 대부분 결혼식은 뷔페다. 디저트 과일까지 해서 아마 일곱접시는 먹은 것 같다. 울 아내가 나를 유일하게 인정하는 것 딱 하나. 뷔페식당에 가면 돈이 아깝지 않단다. 어쨌든 국수로 마지막 입가심까지 했다.

광주광역시 어느 장례식장. 역시 음식은 전라도야. 홍어가 다 나오네. 그리고 반찬도 어쩜 이렇게 맛있냐? 같이 온 친구들과 음식 품평에 정신이 없다. 지난번 대구에서는 빨간 쇠고기국이 맛있었어. 그리고 돼지 수육도 최고였지. 서울 어느 장례식장에서는 술을 안주니 맥이 빠지더군. 전국의 장례식장 음식에 대해 갑론을박한다. 누군 돌아가셨는데 살아 있는 사람은 음식 타령이다.

다시 결혼식장. 그만 먹고 이제 일어날 때가 됐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다음 결혼 팀을 위해 자리 세팅을 다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교 동창인 우린 일어날 기미가 없다. 거나하게 한잔 걸쳤겠다 안주는 주변에 널렸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주제는? 딱히 없다. 학교 다니던 이야기, 자식 이야기 등등. 직원이 왔다. 비워달란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다시 장례식장. 이렇게 웃고 떠들어도 되는 건가? 하마터면 술잔도 건배 할 뻔했다. 50대 후반 아저씨들의 수다는 끝날 줄 모른다. 누가 그랬던가? 수다는 아줌마들만 한다고. 아재들의 수다는 기네스 등재 감이다. 시시콜콜 뭐든 도마 위에 올라온다. 그리고 목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쉿! 목소리 낮춰. 누군가 지적한다. 한잔 술과 수다로 장례식장의 밤이 어두워간다.

언제부턴가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 가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50대 후반의 나이가 되니 경조사가 흔한 일이 됐다. 그런데 대부분 의무감으로 갔다. 체면 때문에, 이런저런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갔다. 부담감도 만땅이었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그래도 나중에 돌려받겠지. 내 경조사에 오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축하와 부의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즐기게 됐다. 신나고 유쾌한가 하면 위로와 위안을 받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지들 그리고 친구들, 눈빛만 교환해도 따뜻하다. 왜 그럴까? 삶의 역사를 함께 했기 때문일 거다. 슬프고 기쁜 추억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별 이야기 아니어도 흥겹고, 별소리가 아닌데도 위로를 받는다. 덤으로 맛있는 음식과 술도 있다. 별도의 약속을 잡을 필요 없이 온 가족이 모이고, 동기 동창들이 모인다. 기막힌 소통 현장이다. 명절에 고향에 갔다 온 기분이다.

축하해주러, 위로해주러 갔던 경조사가 오히려 기쁨과 위안을 받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됐다. 이런 행복한 소통현장이 또 있을까? 부조금 돌려받을 생각을 말아야겠다. 이 즐거움과 위안에 감사할 따름이다. 자 이번 주에는 어떤 경조사가 있나?

김혁조 강원대 교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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