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조, 비추어 보라

2024-10-28

가을이 무르익었다. 느티나무 한그루 너른 마당에 고요히 서 있는데, 해마다 낙엽 떨어지는 너비가 자란 키에 비례해 넓어진다. 조각하는 원유진씨가 빗자루를 들더니 즉석에서 낙엽으로 작품을 만든다. 바람 훅 불면 이내 흩어질 작품이지만 재미있다. 숲치유사 심정아씨는 반야의 뜰에 여덟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 색 모래로 만다라를 그린다. 해남에서 올라온 여인은 노래를 하고, 함평에서 올라온 총각은 피아노를 연주한다.

1년에 한 번은 인연 깊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초대장을 보냈다. ‘달빛 밝고 별빛 좋으니 맑은 가을날에 봅시다’라고. 움직이는 게 번거로웠겠지만 각지에서 반연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네 마음에 향기로움을 모시나이다. 우리네 마음에 달님 별님 사람님을 모시나이다. 따뜻하고 순결한 마음 오롯이 하나로 모아 마음 마음에 불 밝히니 모두에게서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네.” 음악회에서의 마지막 발원이 귓가에 맴돈다.

온갖 착각 속 헤매는 범부의 삶

착각 벗어나는 길은 분명한 심지

백지로 돌아가는 마음 리셋 필요

본바탕 마음 비추어 보기가 반조

“나는 언제나 마음의 중심에 심지가 있어요. 그리고 지금도 공부하는 사람이고 죽을 때까지 공부하는 사람이라.” 지난주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조계종의 큰 어른 성파(사진)스님과 대담 중에 들은 말이다. 예술의전당 직원들이 스님의 거처인 통도사 서운암에서 수천 점의 작품 중에 120점을 골라 ‘성파 선예(禪藝)-COSMOS’를 기획하여 전시회를 연 것이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깨달음 이후 자유자재한 조화로움이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께서는 1983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금니사경전을 본 후 한지에 쪽물을 들인 감지를 만들기 위해 한지 제작법과 천연염색을 배우고, 통도사 박물관에 소장된 팔만대장경판본을 도자기로 만들기 위해 도자기를 배우고, 불상이나 수미단, 발우 등에 쓰이는 옻칠에 관심을 두다 보니 옻칠 활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손대는 것마다 조화로움이 깃든 작품이 되더라고 감회를 털어놓으셨다. 이런 일들은 스님이 통도사 주지 소임을 마치고 난 후 시작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스님의 작업들은 모두 수행을 마친 보살의 자비행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작품마다 조화로움과 자비심이 깃들어 있는 것은.

무엇을 하든 마음의 중심을 잡고 깨어있는 것이 중요하다. 숱한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내남없이 착각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경쟁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현대인들에게는 본성을 잃고 착각하게 하는 요인들이 너무 많아서 마음의 중심을 잡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다. 그럴 때 이러한 조화로움과 수행이 깃든 작품들을 만나는 일은 각자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일 것이다.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 가만히 있는 버스가 갑자기 앞으로 움직인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어느 순간 지하철이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보여 당황했다가 바깥풍경을 보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쉴 때도 있다. 온갖 착각 속에서 사는 게 범부의 살림살이일 것이다. 착각에서 벗어나는 길은 심지가 분명하여 늘 깨어있을 때 드러난다.

“흰 것은 온갖 채색을 다 받아들여. 붉은 것이 들어오면 붉게 보이고, 검은 것이 들어오면 검게 보이는 것이지. 붉은 것에 검은 것이 들어오면 검은 것도 아니고 붉은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려. 그래서 항상 백지에서 출발하야 돼! 흰색은 모든 색을 다 수용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 바탕, 이것만 잘 닦아 있으면 뭐든지 항상 다 나타나.”

성파스님은 작품들은 하얀 백지가 바탕이 될 때 온갖 묘한 작용이 다 일어난다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가르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면 모든 것이 다 수용된다. 어제의 생각에서 벗어나 오늘 이 순간 청정한 마음으로 살면 생각이 뒤섞여 후회스럽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감정들에서 벗어나 늘 활발한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얀 백지로 돌아가는 마음의 리셋이 필요하다. 그것을 선가에서는 반조(返照), 즉 비추어 본다고 한다. 거울을 보고 얼굴을 다듬고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듯이 본바탕의 마음으로 비추어 돌아가는 것이다.

중국의 동산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여 스승님께 반야심경을 배우다가 ‘스승님, 저에게는 분명히 눈, 귀, 코가 다 있는데, 어째서 반야심경에서는 눈, 귀, 코가 없다고 하는가요?’라고 물은 뒤, 이 의문을 가지고 반조를 시작했다. 한국의 동산스님은 제자 광덕스님에게 ‘꿈을 꾸었을 때는 꿈이라고 하자. 생각을 하고 있을 때는 생각하는 나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생각하지 않을 때 그놈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매순 깨어 살라는 준엄한 화두들이다. 범부들은 삶이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살기 바빠서 스스로를 돌볼 틈 없이 살아간다. 이 가을, 이파리들이 낙엽 되어 땅에서 만나듯이, 자신으로 돌아가는 반조를 시작해보자. 그리하면 삶도 작품처럼 멋들어지지 않을까.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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