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2022년 이후 유럽서 현대차 제쳐
니로·씨드로 입지 다지고 '전기차'굳히기
하이브리드는 니로 1종으로 현대차 4종 제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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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대부분 주력 시장에서 현대차에 밀려 늘 아우 신세를 져야했던 기아가 유럽에서만큼은 '형'의 위치로 우뚝 올라섰다. 니로, 씨드 등 상품성 높은 소형차를 중심으로 입지를 넓혀가다 EV6, EV9에 이어 EV3까지 인기를 얻으면서 전기차로 '우위 굳히기'에 돌입한 모습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지난 2022년부터 유럽 시장에서 연간 기준 현대차 판매량을 앞서고 있다. 최근 5년 판매 추이를 보면 2020~2021년엔 현대차가 기아 대비 1만대 가량 앞섰지만, 2022년엔 기아가 54만2423대를 판매해 현대차(51만8566대)를 처음 넘어섰고, 이후 2023년에는 57만2297대로 현대차(53만4307대)와 약 4만대 가량 격차를 벌렸다.
이같은 양상은 유럽 하이브리드차 추이를 보면 더욱 선명하다. 현대차의 경우 아이오닉, 코나, 투싼, 싼타페 등 4종의 하이브리드차와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총 판매량은 지난해 기준 11만1460대에 그쳤다.
반면, 기아는 니로 하이브리드, PHEV로만 4만4157대를 판매했다. 사실상 단일 차종으로 현대차의 절반에 가까운 판매 실적을 올린 셈이다.
전기차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차는 지난 2021년 5만6886대, 2022년 7만1989대, 2023년 7만1858대로 같은 기간 3만9031대, 6만3419대, 7만1602대를 판매한 기아보다 앞섰다.
하지만 2023년부터는 기아가 8만341대로 현대차(6만7116대)를 크게 제쳤고, 지난해에도 기아는 6만8246대를 판매하며 현대차(5만3459대) 위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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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가 철옹성 같던 현대차를 제친 것은 '똘똘한 한 대' 전략으로 친환경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 바탕이 됐다. 내연기관차 기반으로 만들어진 니로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모델의 인기가 높아지자 여기에 가세해 전용 전기차 라인업을 발빠르게 확대하면서 '전기차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진 것이다.
실제 2020년~2021년까지는 현대차 코나EV가 연간 4만6561대, 니로EV가 3만1032대 등으로 기아가 다소 뒤지는 양상을 보였으나, 2021년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가 출시된 이후부터 서서히 판세가 뒤집혔다.
현대차 아이오닉5는 출시 당해인 2021년 1만219대, 2022년 3만996대로 같은 기간 8026대, 2만8658대를 판매한 기아 EV6 대비 앞섰지만, 2023년부터 기아에 우위를 내줬다. 기아 EV6는 2023년 3만6087대로 처음 아이오닉5(2만3907대)를 제쳤고, 다음해인 지난해에도 EV6(2만4323대)가 아이오닉5(1만4320대) 보다 많이 팔렸다.
EV6의 선방은 기아의 유럽 전기차 전체 판매량을 단숨에 높이는 동시에, 후발대 모델들의 성공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하반기에서야 유럽 시장에 진입한 EV3 역시 연간 7060대를 판매했고, 소형차를 선호하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EV9도 작년 한 해동안 1만750대 팔려나갔다.
같은 기간 경쟁했던 현대차 아이오닉 5 N은 2272대, 아이오닉 6는 6631대에 그쳤다. 같은 시기에 전기차 신차를 꾸준히 출시했지만, 현대차 대비 기아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셈이다. 주요시장 중 내연기관이아니라 '전기차'가 성장의 기폭제가 된 시장은 유럽이 거의 유일하다.
최근 유럽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고 있지만, 기아는 기세를 이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장에서 입지 굳히기에 돌입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처럼 EV6, EV9 등 중고가 라인업을 통해 '기술력'을 초반에 증명했다면, 앞으로는 EV3 등 저가 라인업으로 대중 전기차 시장을 잡겠다는 방침이다.
유럽의 경우 소형~준중형 차급의 인기가 높은만큼 당분간 보급형 전기차 영역에서는 유럽 시장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기아는 준중형 전기세단 EV4와 유럽 전용 모델 EV4 해치백을 연내 출시하고, 유럽 공략에 최적화된 모델인 EV2 역시 2026년까지 출시한다.
전기 상용차 시장에서의 수요도 본격적으로 꾀한다. 브랜드 첫 PBV 모델인 'PV5'를 올해 국내 및 유럽에 출시하면서다. 특히 유럽의 경우 LCV(경상용차) 시장이 크고 수요가 높은데다, 친환경차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깔려있어 PV5 확대가 가장 수월한 시장으로 꼽힌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스페인 타라고나에서 열린 EV데이에서 "현재 유럽 EV 시장이 정체되긴 했지만, 비중은 계속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유럽 EV 물량은 2900만대로 전체자동차에서 31%를 차지한다. 성장이 정체된 것은 맞지만, 향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EV 전략은 볼륨 확대가 중요하다. EV2의 경우 10만대 이상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