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 4일 근무제’란 화두를 던졌다. 인공지능(AI)과 신기술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 4일제는 세계적으로도 논의가 활발한 주제다. 다만 임금 감소 없이 근로시간을 줄이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실제 시행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0일 이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 4일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아이슬란드가 있다.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했다.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5~36시간으로 축소하는 내용이었다. 조성일 포스코경연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근로자의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가 상승했고, 생산성도 동일하거나 일부 개선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2020년부터 산업 전체로 주 4일제를 확대했다. 현재는 50% 이상의 근로자가 참여 중이다. 주 4일제 도입이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실업률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CNN)도 있다. 실제로 2022년 아이슬란드의 경제성장률은 8.9%로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기저효과가 컸다. 2023년과 지난해 성장률은 예년 수준인 3~4%대로 돌아갔다.
한국과 단순 비교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아이슬란드의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1.7% 수준이고, 인구도 40만명에 불과하다. 산업 구조 역시 에너지와 어업, 관광업 중심이라 제조업 기반인 한국과 차이가 있다.
아이슬란드 외에도 주 4일제를 검토하는 나라는 늘고 있다. 영국은 2022년 61개 기업, 2900명의 근로자가 참여하는 주 4일제 실험을 진행했다. 임금은 유지하되, 근로시간은 80%로 축소하면서 생산성을 100%로 유지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게 목표였다. 결과는 아이슬란드와 비슷했다. 참여 기업의 매출은 대체로 유지 또는 상승했고, 이직률은 감소했다. 참여자의 90% 이상이 지속적인 제도 운영을 희망할 만큼 만족도도 높았다.
2022년 주 4일제를 공식화한 벨기에는 5일 치를 4일에 몰아서 하는 형태다. 근로시간(주 38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니고, 근로자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차원이다. 한국도 이미 삼성전자 등 다수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00데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데 보통 목요일까지 일을 더 하고, 금요일에 일찍 퇴근하는 형태다. 엄밀히 이는 주 4일제가 아닌 유연근로제로 분류하는 게 맞다.
실제로 임금을 유지하면서, 근로시간을 줄인다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근로자의 참여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스페인 통신사 텔레포니카는 2021년 임금 15%를 줄이는, 주 4일제를 도입하려 했지만,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비용 증가 우려도 있다. 스웨덴의 경우 2015년 요양병원 간호사를 대상으로 주 4일제를 도입했는데 역시 서비스의 질과 근로자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하지만 인력 보강에 따른 재정 부담으로 중단됐다.
결국 한국도 주 4일제를 도입하려면 임금 감소 없이 근로시간을 줄이는 데 합의하는 게 관건이다. 2004년 주 5일제를 시행할 때는 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는 2000년 노사정 합의가 발판이 됐다. 실제로 노동계에선 ‘근로시간 40→36→32시간 순차 단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현 단계에서 주 4.5일제만 시행해도 주당 근로시간을 36시간으로 줄여야 하는데 대타협 수준의 합의가 필요해 쉽지 않을 거란 분석이 많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노동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점엔 대체로 동의한다. 다만 법정 근로시간을 줄여 주 4일제를 도입하는 건 부작용이 클 거란 우려도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은 해외 생산 확대 등의 수단이 있지만, 중소∙중견기업은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만큼 업종별, 기업 규모별로 논의를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며 “노사가 합의하면 독일의 근로시간저축계좌제처럼 일하는 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획일적인 규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