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2024년을 마무리하며 이별을 준비하고 2025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이다. 2024년 갑진년 힘차게 용솟음치는 청룡의 해를 맞이한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2025년 새해를 준비하게 되었다.
청룡은 용기와 도전을 상징하기 때문에 용띠에 태어난 아이들은 용감하고 추진력과 인내심이 강하다고 한다.
청룡의 기운을 받아서 하고 싶은 일 다 이루고 행복한 한 해를 보내기를 바랐던 여러분은 큰 성과와 소망을 이루고 올해가 가는 게 아쉬울 수도 있고 반대로 어려운 상황에서 잘 풀리지 않은 일과 사람들과의 갈등 속에 있었다면 빨리 내년이 되길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의 경우로 2024년의 시작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2023년을 마무리하는 12월 29(금) 오후부터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고 명치 오른쪽에 약간의 통증이 있고 열감이 있어 해열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30일(토) 아침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근처 내과에 가서 복부 초음파를 했으나 큰 문제는 없다며 단순히 소화가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31(일) 새벽 2시경 심한 오한이 있어 거실에 나와 체온계를 찾아 열을 재려고 했으나 손이 떨려 체온계를 떨어뜨리며 잠시 정신을 잃었다. 거실에 쓰러져 있는 나를 보고 놀란 집사람이 119에 전화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체온이 39도를 넘었기 때문에 응급실에서는 격리된 공간에서 코로나 검사부터 진행하였다. 코로나는 음성이 나와 고열의 원인을 찾기 위해 피검사와 방사선검사, 복부 초음파 검사를 진행하였다. 주말이고 연말이라 응급실 당직 의사나 검사담당자가 빨리 검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방사선판독이나 검사결과를 보는 게 여의치 않았다.
오전 6시가 돼서야 급성담낭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연말연시라 마취과 의사 한 사람이 응급 수술을 담당하고 있어 기다려야 하고 수술 담당 의사에게도 수술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하였다.
빠르면 8시에 수술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지만 12시가 돼도 연락이 없었다. 응급 수술이 늦어지면 염증 있는 담낭이 터져 다른 장기에 손상을 주게 되어 큰 수술이 될 수 있는 응급상황이었지만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2시쯤 돼서 담당 의사는 염증을 줄이는 시술을 먼저 해야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시술 후 4시쯤 수술을 받았다.
연말에 응급실에 가서 수술까지 하리라 상상도 못 했던 나는 새해 첫날 1월 1일에 회복을 위해 항생제와 진통제를 포함한 5종류의 수액을 맞으며 병실에서 지내야 했다. 열이 나고 통증이 있고 식사 조절이 필요하였지만, 주치의는 복용약으로 조절 가능하다며 수술 4일 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새해부터 직장에 출근 못 하는 것은 물론 신년하례식과 저녁 약속은 참석 못 하게 되어 양해를 구해야 했다. 담낭 수술 후 고지방 및 육류 등 기름진 음식은 물론이고 튀기거나 구운 음식, 자극적인 음식, 매운 음식, 가스를 발생시키는 양파, 무, 김치, 오이, 옥수수, 콩류 등을 먹지 못하고 식사량이 줄다 보니 체중 10Kg이 쉽게 빠졌다. 나름 음식 먹는 것을 조심하였지만 수술 10일 후 열이 오르고 계속 설사를 하여 담낭 수술 후유증인 것 같아 야간에 응급실에 갔는데 장염으로 진단받고 또 다른 약을 추가로 먹어야 했다.
수술과 장염 등으로 체력이 바닥 난 상황에서 몇 달 전에 예약했던 전립선 비대증 수술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정기 건강검진 결과 PSA(전립선 특이 항체) 수치가 평소에는 2∼3 정도였는데 4.7이 나와 암 가능성이 있다며 정밀검사를 권하였다. 대학병원 검사결과 수치가 4.1로 다소 떨어졌고 방사선검사 결과는 음성이었으나 가족력이 있다고 하니 조직검사가 필요하고 하는 김에 절제술을 받는 것이 좋다고 하여 수술 날짜를 받은 상태였다. 전신 마취를 한 번도 받지 않았던 사람이 3주 만에 전신 마취 수술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이 무리라며 가족들은 1∼2달이라도 늦추라고 했으나 담당 의사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여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조직검사는 정상으로 나와 안도하였으나 수술 후 치유 과정에서 여러 증상으로 인해 4개월 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 이런 와중에 의정 갈등으로 증상이 심해져도 병원 진료받기가 쉽지 않았다.
평소 몸에 이상이 없는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잊고 지낼 수 있다. 너무 흔한 산소나 물이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생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병이 찾아오고 문제가 있으면 그제야 건강의 고마움을 깨닫는다.
새해부터 두 번의 수술, 더 정확하게 말하면 두 번의 시술과 수술로 모든 일상이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닌 완전히 멈추게 되었다. 일상이 멈추면서 나를 뒷바라지하는 가족에게 짐이 될까 봐, 내가 하던 일을 못 하게 될까 봐 그리고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까 봐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강풍과 폭우로 집이 무너지고 자동차가 뒤집히고, 커다란 나무들이 뽑히고 인명 피해가 일어나곤 한다. 큰 태풍에 500년 넘는 고목은 쓰러지지만, 둘레가 10cm도 안 되는 대나무는 쓰러지지 않는다. 비바람 속에서도 대나무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마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자라는 식물로 지역 토양과 기후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르지만, 하루 60cm에서 최대 100cm까지 자란다. 대나무는 그냥 자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자신의 몸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디를 형성하기 위해 성장을 멈춘다. 만약 멈춤 없이 그냥 일직선상으로 자란다면 강풍에 그냥 힘없이 쓰러지겠지만 마디는 대나무를 강하게 하고 성장을 지속시켜준다.
힘든 일로 꺾이거나 부서진 것 같아 낙담하고 절망하면서 일상이 멈춘 것 같다면 꿈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 조금만 버텨 끝까지 견디어 내면 이 일이 언제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더 강하고 희망차고 성장하는 삶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혜민 스님이 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멈추면 우리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멈추면 우리는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볼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혜민 스님은 편안한 멈춤을 가지면 간단한 진리가 시작된다고 하였는데 나의 경우는 편안한 멈춤보다는 어쩔 수 없는 멈춤이었고 육체적으로 장기를 몸에서 제거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며 비슷한 감정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육체적으로 키가 크고 성장한다고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은 생각이 깊어지고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 청사(靑蛇)의 해이며 뱀은 지혜롭고 민첩함과 계획성을 가지고 있다.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올해보다 내년이 변화와 성장의 해가 되며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좋은 꿈을 꾸며, 혜민 스님의 글 같이 되길 기도해 본다.
기도하세요/ 나와 그가 행복해지길/ 나와 그가 건강해지길/ 나와 그가 평화로워지길/
계속 기도하다 보면 진짜로 그렇게 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