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사회가 부여한 죄책감·2차 가해로 침묵
참사 대응 방식 또 다른 참사로 진화…반복 막아야
세월호 이어 이태원도 현장 실무진에 책임 전가
"의무는 규정에만 있는 게 아냐…윗선 책임져야"
[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악성 댓글과 막말 같은 차가운 시선에 갇혀 침묵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가 있다. 10.29 이태원 참사(이하 이태원 참사) 생존자다. 이 과정에서 참혹한 기억에 괴로워하던 한 생존자는 세상을 등졌다.
정부는 구조·수습 참여자와 상인 등 피해자를 약 498명으로 추산한다.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입은 이태원 참사의 특성상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피해자 수는 사망자 수를 넘는다.
이들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오민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이태원 참사 법률대응 태스크포스(이태원TF) 단장(법무법인 율립)이 그중 한 명이다. 뉴스핌은 지난 16일 그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태원TF는 변호사 약 60명으로 구성돼 있다.
오 변호사가 단장으로 있는 이태원TF는 국가배상소송 청구인을 모집하고 있다. 유가족과 생존자와 구조자 등을 위한 소송으로 두 갈래로 나뉜다. 특히 이태원 참사 생존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 2주도 안 남은 소송 가능 기간, 참여 생존자는 0명..."생존자 권리 구제 반드시 필요"

사망자와 생존자들이 겪었던 어려움의 원인은 같지만 피해 내용과 양상이 다르기에 소송은 양갈래다. 생존자는 사망자와 지인일 가능성이 높지만 사회가 부여한 죄책감으로 유가족과 같은 다른 피해자들과 소통이 어렵다. 불특정 다수라 뭉치기도 어렵다. 생존자들은 지난 3년간 각개 전투 중이다.
여기에 이태원 참사 발생일로부터 3년이 되는 오는 29일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2주도 남지 않은 소멸시효가 지나면 국가 책임을 물을 방법을 찾기 어렵지만 생존자를 위한 소송은 시작마저 어렵다.
오 변호사는 생존자를 '생존 피해자'로 칭했다. 이태원 참사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들도 피해자다. 하지만 이들을 비난하는 2차 가해에 또다시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생존자 중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힌 이들은 한 명도 없다.
그는 "이태원 참사 기사에 달리는 악성 댓글을 보면 나서기보다 숨고 싶다는 마음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몸과 마음을 다쳤지만 (생존자로) 특정될 시 2차 가해가 우려돼 전면으로 나서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잘못한 게 없는 생존 피해자들을 숨게 만드는 2차 가해가 없도록 국가가 법적으로 책임지고 잘못했다는 공식적인 안을 만드는 국가배상소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생존 피해자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며 "소송을 통해 이분들이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되고 문제 제기를 통해 국가의 책임을 정확히 묻고 피해를 구제받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존 피해자는 만나기도 어려워 알음알음 찾아다니는 실정"이라며 "형사 판결문에도 부상자로 명시돼 있고 행정안전부에서도 명단을 갖고 있지만 개인정보 등에 이유로 확보가 안 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 재난을 호도하는 2차 가해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죄 외에도 이를 처벌하는 별도의 제재나 처벌 수단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 유가족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이태원에 아이 보낼 것"

오 변호사는 세월호와 고(故) 김용균·백남기 농민 등 다양한 사회적 재난 현장에 자리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도 처음부터 현장을 지켰다. 그는 "참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고 참여 계기를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재판에 대해 오 변호사는 "무죄로 나온 사안을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며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있고 정치적이나 도의적 책임을 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점"이라고 꼬집었다.
금고 3년형을 선고받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을 제외하고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던 이상민 씨는 지난해 12월에야 물러나며 "모든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는 글을 남겼다. 이들에 대한 항소심은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진상 조사 결과를 재판에 반영하기 위해 미뤄졌다.
오 변호사는 판결에 대해 지휘부가 현장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되짚었다. 그는 "모든 의무가 규정에서 나오는 게 아닌 상급 지위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책임져야 한다"며 "세월호도 현장에 출동했던 이들만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이태원 참사도 똑같이 실무진에게만 책임을 전가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식의 판결이 지속되면 일선 경찰이 열심히 일할 의욕을 낮추고 현장에 있는 이들이 책임질 것이 두렵게 만들어 움츠러들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참사에 대응하는 방식과 사회적 성숙이 또 다른 참사에서 빚어지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보았다. 오 변호사는 "참사가 발생한 이후 전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건 다행이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안 좋다"며 "적어도 3년상이라고 부르며 슬퍼할 시간이 필요한데 유가족이 전면에 나서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하고 투쟁해야 풀렸던 부분이 많았다"고 아쉬워했다.
오 변호사는 언제 어디서든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믿음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유가족이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내 아이가 이태원에 가고 싶다고 하면 보낼 것이다'라고 하셨다"며 "아이가 놀러 갔다는 게 화두가 아니라 뭘 하든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다는 믿음을 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취지로 가장 마음에 남는다"고 말했다.
aaa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