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스포츠의 세계에서 영광과 시련은 종종 같은 해, 같은 이름 아래 교차한다.
2025년 시즌을 마무리하는 토요타 가주 레이싱(Toyota Gazoo Racing, 이하 토요타)만큼 이 명제를 온몸으로 증명한 팀은 없을 것이다. 이들이 세계 최정상 무대에 내건 두 개의 팩토리 프로그램은, 한쪽은 역사상 가장 완벽한 시즌을 보냈고 다른 한쪽은 가장 뼈 아픈 실패를 맛보는 극적인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토요타 모터스포츠 활동의 핵심적 두 갈래라 할 수 있는 FIA WRC와 FIA WEC 경쟁 속에서 토요타의 상황, 그리고 2026 시즌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2025년 FIA WRC에서 펼쳐진 토요타의 질주는 신화 그 자체였다
8회 챔피언 세바스티앙 오지에, 꾸준함의 대명사 엘핀 에반스, 돌아온 ‘천재’ 칼레 로반페라가 구축한 드림팀은 그야말로 무적함대였다. 시즌의 백미는 핀란드 랠리에서 펼쳐진 퍼포먼스였다. 토요타는 이곳에서 1위부터 5위까지 순위표를 모두 자신들의 GR 야리스 랠리 1으로 채웠다.
이외에도 시즌 11개 랠리 중 10승을 쓸어 담으며 제조사 챔피언십은 일찌감치 그들의 차지가 되었다. 현재 토요타는 572 포인트를 쌓아 2위 현대를 125 포인트라는 압도적인 격차로 따돌리고 있다. 이제 모든 관심은 드라이버 챔피언십의 향방과 랠리 재팬에서의 성적에 집중된다.

현재 FIA WRC 드라이버 순위는 돌아온 황제, 세바스티앙 오지에는 물론이고 터줏대감 엘핀 에반스, 그리고 돌아온 챔피언 칼레 로반페라 등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즉 토요타 소속 드라이버들이 근소한 차이로 우승을 다투고 있다. 랠리 재팬에서 더블 챔피언을 확정하는 ‘특별한 순간’을 맞이할 전망이다.
말 그대로 2025년의 FIA WRC는 토요타와 FIA WRC 역사에 길이 남을 시즌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FIA WRC의 환희가 눈부실수록 FIA WEC의 그림자는 짙어진다.
불과 2년 전까지 르망 24시 5연패를 달성하며 내구레이스의 패권을 장악했던 ‘절대 강자’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었다. 2025년, 토요타의 GR010 하이브리드는 무기력했다. 시즌의 정점인 르망 24시에서는 경쟁자들의 우승을 지켜보며 포디움의 가장 낮은 곳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여기에 어쩌면 시즌 중 가장 중요한 경기, 후지 6시간 내구 레이스가 펼쳐지는 후지 스피드웨이에서는 8위와 16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는 FIA WRC 팀이 잠시 후 브랜드의 심장부에서 펼칠 챔피언의 축제와 너무나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시즌 최종전, 바레인 8시간 내구 레이스를 앞두고 있는 현재 토요타의 성적은 처참하다. 제조사 챔피언십 순위에서 토요타는 105 포인트를 얻는 데 그쳐, 선두 페라리(204 포인트)는 물론 포르쉐(165 포인트)와 캐딜락(143 포인트)에도 뒤처진 4위에 머물러 있다.
드라이버 챔피언십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현재 토요타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드라이버는 #7 GR010 하이브리드의 마이크 콘웨이, 카무이 코바야시, 닉 드 브리스 조이지만, 이들의 순위는 종합 7위, 획득 포인트는 50점에 불과해 ‘올 시즌의 무력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선두를 달리고 있는 페라리 #51번 차량의 알레산드로 피에르 구이디, 제임스 칼라도, 안토니오 지오비나치 조가 쌓아 올린 115 포인트와 무려 65 포인트나 차이 나는 수치로, 시즌 최종전 결과와 상관없이 챔피언 타이틀 경쟁에서 완전히 멀어졌음을 의미한다.

무엇이 토요타의 발목을 잡았을까?
일각에서는 토요타가 올 시즌 ‘저조한 성적’을 보이고 있는 것은 ‘페무국(페라리+사무국)’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공정성’에 의문이 더해진 ‘BoP(Balance of Performance)’의 적용 및 운영에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 2023년, 100주년을 맞은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를 앞두고 발표된 BoP는 모터스포츠 팬들과 관계자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토요타에게 과도할 정도의 무게가 더해졌고, 50년 만에 복귀한 ‘페라리’에게 확실히 유리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실제 올 시즌 내내 BoP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토요타 측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실제 카무이 코바야시가 “마치 다른 클래스에서 경쟁하는 것 같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정도였다. 여기에 팬들 사이에서도 BoP에 대한 불만은 계속 쌓이고 있다.
여기에 ‘대회 운영’ 등에서도 토요타에게 가혹하다는 이야기 또한 이어진다. 실제 레이스 운영에서의 세이프티카, FCY(풀 코스 옐로), 페널티 등이 ‘토요타’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의견이다. 실제 의심되는 사례들도 있었지만 ‘의혹’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외부로만 돌릴 수는 없다
토요타의 전략과 레이스 운영에서의 ‘과감성’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토요타는 2023 시즌부터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전략, 그리고 ‘상대의 오류’를 기다리는 전략으로 ‘리스크 관리’를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앞서 달리는 경우’에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실제 올 시즌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승리를 거머쥔 페라리는 ‘안정적인 운영’ 보다는 날씨에 대한 도박수를 던지는 과감한 타이어 교체를 통해 레이스를 이끌었다. 그러나 토요타는 말 그대로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며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답답함을 자아냈다.

여기에 토요타의 홈 서킷,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펼쳐진 후지 6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하이퍼카 클래스 데뷔 첫 승리를 거머쥔 알핀(Alpine) 또한 ‘도전자의 승부수’가 무엇이지 잘 보여주며 도전자가 된 ‘현재의 토요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가 있었다.
알핀은 레이스 후반, 포르쉐, 푸조 등과의 경쟁 속에서 타이어를 두 개만 교체하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순위를 끌어올려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경기 내내 특별한 전략이나 승부수 없이 안정적인 레이스로 ‘리스크 관리’에 집중한 토요타의 행보와는 대조를 이뤘다.

물론 토요타는 이대로 주저앉을 생각이 없다
반격의 서막은 이미 올랐다. 2026 시즌을 위해 설계가 동결된 하이퍼카의 성능을 끌어올릴 ‘에보(Evo)’ 업데이트 카드를 사용한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일부 부품을 바꾸는 수준이 아닌 대대적인 업데이트로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 토요타는 BoP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공기역학과 코너링 성능 개선에 집중한 ‘새로운 에어로 패키지’ 개발 중이다. 새로운 패키지는 차량 하부의 공기 흐름을 완전히 재설계 해 ‘그라운드 이펙트’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더 높은 코너링 스피드를 확보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전체적인 주행 페이스 개선’에 집중한다.
특히 새로운 차체 패키지의 영향은 ‘내구 레이스의 경쟁력’ 개선에도 힘을 더하며 기존의 GR010 하이브리드와 완전히 다른 외형을 갖췄다. 이러한 변화는 말 그대로 '성능 개선'은 물론이고 도전자가 많아지는 FIA WEC의 즐거움을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토요타 측은 새로운 차체 패키지의 설계를 마치고 프랑스 폴 리카르 서킷에서 테스트 등을 진행하며 검증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BoP’에 대응하려는 토요타의 의지, 그리고 ‘FIA WEC 챔피언’에 대한 목표 의식을 명확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기술적 업데이트 만으로는 왕좌를 되찾기에 충분하지 않다. 2026년, FIA WEC는 기존 챔피언 경쟁을 펼쳤던 페라리에 이어 어느새 경쟁력을 더한 캐딜락,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푸조와 알핀, 애스턴마틴 등에 이어 LMP2에서 담금질을 이어가고 있는 ‘제네시스’가 새롭게 합류해 경쟁의 열기를 더한다.

토요타의 입지도 달라진다. 이제는 ‘챔피언’ 또는 ‘챔피언 후보’에서 다른 브랜드와 같은 ‘도전자’의 위치에서 레이스를 시작한다. 이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도전자’의 자세를 되찾아야 한다. 후지에서 알핀이 증명했듯, 때로는 모든 것을 거는 과감한 결단과 데이터에 기반한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레이스카의 경쟁력과 과감함을 더한 전략, 그리고 BoP의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외 행보까지도.. 이렇게 모든 부분에서 발전과 혁신을 이뤄낼 때 토요타는 다시 한 번 FIA WEC 포디엄 정상에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