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기] 책 읽기 좋아하던 한 아이가 두 아이의 아빠가 되다

2024-06-27

책 읽기를 좋아하고 한때 국어 선생님을 꿈꿨던 한 아이가 어느새 소중한 아내와 누구보다 사랑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당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 하나 있는데,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라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돌이켜 보면 크게 행복한 추억이 많지 않았던 나와 아내가 제일 뜻이 맞았던 부분이었다.

그렇게 달려왔던 10여 년을 돌아보면, 아쉽고 후회되는 부분들이 늘 많이 생각난다. 하지만 일과 육아를 핑계로 대충 덮어가며 지내온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단순히 학생 때 잠깐 꿈꿨던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싶은 개인적 욕심일 수도 있다.

내 현재 삶 전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가족이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부분은 나와 닮은 것 같으면서도 100%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들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이 가진 본능처럼 후대에 내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10대에는 ‘나’라는 단어가 중요했고, 20대에는 ‘너랑 나’라는 관계가 중요했고, 30대에는 ‘우리’라는 가정이 중요했다. 어린 시절 가장 후회하는 것은 부모님과 소통하는 것을 서로 잘 몰라 그냥 그렇게 되는 대로 흘러갔던 것이다. 늘 감정이 앞섰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보다는 나라는 것을 중심으로 지냈던 것 같다. 그러한 아쉬움이 가슴속 한 켠에 늘 자리 잡고 있어서 이 글을 통해 아내에게, 가족에게 무언가 전해지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진지하게 또는 무겁지만은 않게 써보려고 한다.

나는 참 무식하다. 겪어보지 않았던 상황들이어도 마치 머리로 이해되면 다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첫째를 가졌을 때, 참 무례했다. 아내가 조금 힘든 몸으로 첫째를 가졌을 때, 처음에만 걱정하고 그게 익숙해져 무뎌졌다. 여러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 병원이 아닌 대학병원에 다녀야 했고,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의사가 얘기했을 때도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동시에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근거 없는 용기가 생겼다. 아내는 힘들어했고 두려워했다. 나는 괜찮다 했다. 내가 다 책임진다고 호언장담했다. 참 무례하고 무식했다. 첫째가 태어나고 큰 문제 없이 8살이 되어 학교에 가게 된 현재까지 돌이켜보면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했던 행동들과 말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내도 처음으로 겪는, 자기 뱃속에 열 달을 하나의 존재를 품고 견디는 시간을 어찌 이해할까? 아무것도 100% 확신하지 못하는 수술실에 차디찬 침대에 누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품고 있는 존재와 엄마라는 존재를 오롯이 맡기는 수술 시간이 부모가 되는 처음 단계라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수술대기실에 있는 모니터로 아내 이름 뒤에 수술 대기에서 마취중, 수술중, 회복중이라는 글씨가 차례로 보여지는 시간이 내가 겪어왔던 모든 시간보다 더뎠고 괴로웠고 무서웠다. 수술실 문 앞에서 간호사에게 “아내는 괜찮나요?”라는 질문이 너무나도 자연스레 튀어나왔고, 간호사가 안고 있는 첫째가 나를 보고 빽~하고 울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와 아내만 살고 있던 집에 첫째가 들어오고 그 가정이라는 곳에서 자라는 모습들을 보며 아내와 나도 같이 자라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 엄마 아빠 역할을 하는 아내와 나는 어설펐고, 실수도 많았고, 생각과는 다른 모습도 많았다. 많이 웃었고 많이 울었다. 많이 얘기했고 많이 들었다.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쉬워 보였는데 그 안은 치열했다. 처음 겪어보는 삶의 패턴에 당황했다.

아마도 내 부모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들도 어설펐고, 당황했고 치열했을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쉽게 하는 말 중에 나중에 결혼해서 너와 똑같은 아이를 낳아 봐야 자기네 마음을 안다고 하는, 흘려들었던 말들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내 가슴에 꽂혔다. 태어난 아이가 아프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했고, 아이가 슬프면 내가 더 답답했고, 아이가 웃으면 세상 어떠한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기뻤다. 내 부모도 그러했을 것이다. 다만 표현하는 방법이 잘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내 표현도 여전히 서툴다. 내가 편한 방법대로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할 때도 많다. 가정은 나뿐만 아니라 나와는 다른 구성원들이 있기 때문에 각자에게 어울리는 표현 방법도 필요하기에 나 또한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다듬어진다. 오늘도 다듬어지는 날 기대하며 가정 속으로 들어가 본다.

류민수 펜을 든 아빠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