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서지는 아이들
애비게일 슈라이어 지음
이수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사립고교생 노라는 친구들 중에 ‘털뽑기장애’라 불리는 발모벽, 해리성정체성장애, 투렛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활달하고 밝은 10대 소녀로서는 정상적이라면 잘 알 수 없는 진단명들이다. 노라는 이 친구 중에 상당히 많은 아이는 몇 년째 심리 상담을 받고 있고 일부는 항우울제 같은 정신과 약물도 복용한다고 했다. 심리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기 전보다 상태가 더 나빠진 친구도 있다고 했다.

노라는 『부서지는 아이들』의 저자 애비게일 슈라이어가 만나 심층 인터뷰한 수백 명의 청소년, 부모, 교사, 정신과 의사 중 한 명이다. 노라는 “친구들이 정신적 문제 하나쯤 겪고 있는 걸 당연히 여긴다”며 “그런 진단을 받는 게 정상인 것처럼 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같이 잘 알려진 것 외에도 자기애성인격장애, 적대적반항장애, 품행장애, 음식회피증 등의 진단명을 버젓이 자신의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올리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탐사 저널리스트인 슈라이어는 이 책에서 “정신 건강 전문가들은 특정 세대의 대다수가 스스로 병들었다고 믿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Z세대 중 약 40%가 정신 건강 전문가에게 치료받았다. 슈라이어는 상대적으로 평화시대를 살고 있는 미국의 젊은 세대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몰리게 됐는지에 대해 오랜 시간 공들여 깊이 파고들었다.
그가 찾아낸 원인 중 가장 큰 문제는 ‘감정 존중 양육’ ‘친구 같은 부모’가 돼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부모들의 아이들에 대한 전례 없는 과잉보호와 배려였다. ‘내 아이의 마음을 절대로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신조를 굳게 지키는 부모들이 오히려 나약하고 자기 권리만 챙기는 잠재적 심리 환자들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아이들의 심리를 살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심리 치료로 인도하거나 심지어 치료 약물 복용까지 쉽게 받아들였다는 데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치료가 병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병을 키우는 의원병(醫原病)의 원인제공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부모들도 금지옥엽으로 키우는 금쪽이, 소황제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과잉보호로 여러 가정·사회 문제가 거의 매일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이들에 대한 심리 치료와 약물 복용은 미국처럼 유행으로까지는 번지지 않은 상태다. 미국과는 사정이 좀 다르다고는 하나 일부 교육과열 부모들이 이와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하니 언제까지나 강 건너 불처럼 완전히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상황이긴 하다.

아이들이 잘되라고 관심을 쏟아붓는 게 오히려 역효과로 나타나는 이런 기현상은 가정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미국의 학교 교실에선 이른바 ‘감정 체크인’으로 일과를 시작하는 일이 일상화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는 과거처럼 단호한 자세로 훈육하기보다는 아이들 눈치만 보면서 갈등을 회피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매사에 아이들의 감정을 살피는 일이 오히려 불안정하고, 무기력하고, 자기만 아는 아이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곧 다가오는 5월 가정의 달엔 어느 때보다 자녀들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우리 집 자녀들의 정신건강은 어떤지 다시 한번 잘 챙겨볼 때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이번 기회에 부모가 먼저 먼저 각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아니라 ‘학부모와 학교가 달라졌어요’가 돼야 한다고 슈라이어는 경고한다. 아이들이 실패와 고민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부모는 애써 눈 감으며 한 발 뒤로 물러서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녀 양육 방법을 놓고 세계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재출발의 기점이 될 수 있다. 부모의 잘못된 관심이 아이를 부서지게 만들고, 학생들 눈치만 보는 소극적 학교 교육이 잘못된 성인을 사회에 대량 배출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진단부터 정확히 내려야 할 것이다. 원제 Bad Therapy: Why the Kids Aren't Growing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