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중대재해 발생 기업이 대출 제한 등 불이익을 받도록 하기 위해 은행권의 여신업무 실태 파악에 나섰다. 은행권은 관련 내규 강화는 가능하지만 여신업무 기준의 급격한 변화는 기업 경영에 타격을 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30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 국무회의에서 김병환 위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한 ‘중대재해 발생 기업 대출규제 강화’ 방안과 관련된 실태 파악을 진행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가 일어나고 그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 대출 제한을 할 수 있게 은행 내규에 돼 있다”며 “비재무 항목 평가 시 중대재해 부분을 더 강화하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금융위 제안이 아주 재미있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은행들의 여신업무 관련 내규나 리스크 관리 기준 등에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평가를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은행들은 기존에도 기업 대출을 할 때 기업 평판 등을 고려하는데 실제 어떤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기업대출 시 해당 기업의 재무 건전성뿐 아니라 비재무 항목 평가도 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재무 항목 중에는 대표의 도덕성이나 윤리경영 실천을 위한 인프라 구축, 사회공헌, 법규 준수 여부 등이 있다”며 “대출 여부를 최종 심사할 때도 비슷한 내용이 포함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가 고려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행 체계는 기업이 대출 제한 등 경제적 불이익을 피하려고 중대재해 예방에 투자할 정도로 엄격한 수준은 아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의 기업 평가체계 수정을 통해 중대재해 반복 발생 등이 대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권은 내규를 강화해도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갑자기 대출을 제한하면 기업이 망할 수 있고 실업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며 “제도를 변경해도 대출 제한이라는 극단적 처방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대출 심사 시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불이익을 주는 방안뿐 아니라 안전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기업에 정책금융기관이 대출금리를 낮춰주는 등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상장기업에 대한 ESG 평가 시 중대재해 항목 비중을 강화해 중대재해 발생 기업이 투자를 받는 데 불이익을 겪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적어도 공적 연기금들만이라도 산재 다발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를 하지 않거나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해당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