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계 상황에 몰린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미흡해 구조조정 마저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안을 통해 내년부터 여수 등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에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산을 팔아 양도차익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법인세 납부 기한을 5년 유예 5년 분할납부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4년의 유예기간이 지나면 3년에 걸쳐 나눠 내야 하는 현행 조특법 규정을 고쳐 기업 구조조정의 돕겠다는 취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계 산업 구조조정을 촉진해 위기 확산을 방지하고 산업경쟁력을 회복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정도 혜택으로는 자발적 구조조정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석화업계는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때까지 과세를 이연하는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해 달라고 정부에 호소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업계가 요청한 바이오플라스틱 및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에 대한 국가전략기술 포함 요구도 올해 세법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 기술들이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되면 투자금의 최대 25%를 감면(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지원도 없고 고부가사업 전환을 위한 혜택도 없으면 중국에 맞서 어떻게 생존하라는 말이냐”고 토로했다.
국내 석화업계의 위기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5월 전남 여수가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지난달 충남 서산과 경북 포항이 지정 신청서를 냈다. 전남 여수와 충남 서산, 경북 포항 등은 모두 국내 크고작은 석유화학 산업단지가 위치한 곳들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석유화학 업체들의 실적 충격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기후에너지 정책 싱크탱크 넥스트의 김수강 연구원은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메카인 여수석유화학단지의 위기가 지역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여수의 2024년 지방세 징수액은 전년 대비 26.8%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요가 위축된 와중에 최대 수출국 중국의 대규모 설비증설에 따른 공급과잉 여파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2021년 10%에 달했던 국내 주요 7개 석유화학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률은 2022년 1.9%로 급전직하해 올해는 -1.2%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본업으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기식 국회미래연구원장은 “우리 석유화학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과 수요 감소, 수익성 악화 등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며 “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체감하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서도 설비 효율이 낮은 NCC(나프타 분해 설비)를 통합·감산하려는 자발적 움직임이 있으나 기업 간 입장 차이 등으로 속도가 더디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정부 주도의 사업재편도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기간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한 지역경제 살리기를 공약했지만 새정부 출범 이후 두달간 진지한 후속 논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