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의 세계: 죽은 자의 증언

‘부검의 세계’ 시리즈를 시작하며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 아파서 죽거나(병사)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자살) 살해당하거나(타살) 사고를 당하거나(사고사) 노쇠해 죽는다(자연사). 사인(死因)이 확인되지 않은 사망을 변사라고 한다. 추락으로 숨졌다면 사고사인가. 자의로 뛰어내렸는지, 누군가 밀었는지, 발을 헛디뎠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한 점의 의혹도 없는 증명이 필요하다.
시신은 죽은 자가 말하는 최후의 증언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부터 죽음에 이른 흔적을 남긴다. 그 시신에서 의문의 죽음을 밝혀내는 게 부검이다. 법의관은 부검을 바탕으로 의학적 사인과 법률적 사인을 찾는다. 법의학과 부검은 주검 속에 숨겨진 비밀을 어떻게 풀어낼까.
세모그룹 창업주 겸 구원파 지도자였던 ‘유병언 사망 미스터리’를 첫 사례로 다룬다. 부검 결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가장 컸던 사건이었다. 과학적 조사 발표에도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죽음을 밝혀낸 과정을 짚어보기에 이만한 사례가 없다.
‘부검의 세계 : 죽은 자의 증언’ 취재팀은 수십 년간 굵직한 사건의 해결을 이끌어온 전현직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등 법의관들을 직접 만나 부검에 얽힌 사연과 비화를 청취했다. 법의관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사망부터 코로나·마약·의료사·재심을 거쳐 최근의 무안공항 항공기 추락 사고까지 희생자들의 부검에 참여했다. 이제 부검이 증언하는 사회적 사건의 진실을 재조명한다.
1화 : 포르말린과 저울, 칼끝에서 드러난 죽음의 비밀
유병언은 살아 있어요. 우리나라 아니고 필리핀 가서 산다고 하던데….
지난 3월 11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삼거리 매실밭에서 마을 주민 박윤석(88)씨를 만났다. 그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시신의 최초 발견자다. 박씨는 지금도 사체가 유병언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왜 살아 있다고 믿나.
서울에서 온 경찰들이 그랬다. 높은 사람들이 유병언한테 돈 많이 받아서 외국으로 보내버렸다고.
시신은 어떻게 발견했나.
평소 매일 가던 매실밭인데 그날은 풀이 좀 눕혀져 있었다. 그래서 가보니 시신이 있었고 바로 신고했다. 옷이 좋아 보였고 키가 작았다. 얼굴은 못 봤다.
누구의 시신이라고 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