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학기를 마칠 무렵이었다. 3학년 학생 셋이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타 대학 학점교류를 신청했는데, 그 학교에 개설된 교과목 가운데 무엇이 유사 교과로 인정될지 상의하러 온 것이었다. 동일 전공 학과인 데다 과목명도 비슷해서 당시 경험 없던 내가 보기에도 유사 교과 승인엔 문제없을 듯했다. 다만 수강 인원이 많아봐야 15명 남짓한 수업에서 가장 반짝거리던 그 세 명이 다음 학기엔 보이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허전했다.
“학생들이 학점교류를 많이 신청하나요?” 그날 오후 과사무실에 들러 조교 선생님에게 문의하니 이제껏 그래왔던 편이라고, 한번 교류 수학을 다녀온 학생은 연이어 가기도 한단다. 만일 희망하면 전공과목의 절반 가까이를 다른 학교에서 들을 수 있으며, 대체로 그런 적극성을 지닌 학생일수록 중등교사 임용시험 결과도 좋은 편이었다 했다. “그렇군요.” 돌아서면서 일순간 허전함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 솟아나려 했다.
첫 학기 시간표를 받고 ‘공법과 시민교육’ ‘법교육 사례연습’ 같은 커리큘럼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사범대 아닌 법대에서 공부한 데다 기초법학 전공자인 나로선 이름부터 생경한 과목들이라 부담이 컸다. 수업안을 어떻게든 내 연구 관심과 연결지어 구성해보려 이리저리 꾀부리다 중간고사 직후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학생들은 4년 내내 나와 함께 법학을 공부할 텐데, 선생의 논문 주제에 맞춰 법사회학이나 법철학 분야의 지식만 습득한 채 사회과 중등교사가 되면 안 될 듯했다. 그때부터 임용시험 기출 문항을 찾아 풀어보고 교과서를 종별로 뒤적이며 수업자료를 만들었다. 학부생 시절 공부하기 싫어했던 민사법도 다시 들여다봤다. 그런데 학생들이 전공과목의 상당 비율을 타 대학에서 이수한다면, 또 그게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더 도움 된다면, 지금 이 노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들다 아차 싶었다.
쉬는 시간에 학생들끼리 “야, 이 수업 재밌다” “이게 진짜 대학강의 듣는 거지” 말하는 걸 우연히 엿듣고 화장실에 숨어 문 잠근 채 좋다고 입 찢어졌던 초임 강사 시절에도, 독일 학생들 앞에서 영어로 서툴게 강의하다 ‘시신을 염하다’를 ‘salt’란 단어로 표현하고 뒤늦게 정정했던 낯부끄러운 순간에도, 그들이 내 학생이 아니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음 학기에 다시 만나지 못할지라도 매번 수업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 했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매 학기 만날 학생이라 하여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의미의 ‘내 학생’은 아닌 거다. 시험이나 취직 준비에 필요한 내용을 제일 잘 알려주는 사람도 내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성실히 수업을 준비해야 함은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가르치는 일은 내 직업적 소임이며 해당 교과목들을 강의하도록 배정받았기 때문이다. 학부 4년의 사이클을 지켜보기도 전에, 고작 한 해 함께했으면서 미성숙한 애착을 품었다니.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개강을 앞두고, 상경할 학생 셋과 만나 식사했다. 도움 될 만한 근사한 조언을 들려주려는 강박을 내려놓자 비로소 말이 술술 나왔다. 씨네큐브에 가서 영화 한 편 본 후 건너편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를 관람하고 광화문 뒤편 아담한 가게에서 네 가지 치즈가 들어간 파니니를 사 먹는 주말 동선을 자신 있게 추천했다. 답례로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서 굉장한 초콜릿크림 식빵을 구워낸다는 동네빵집을 소개받았다.
각별함을 갖되 애착하지 않을 것. 거울 보고 표정 연습하듯 좋은 선생님을 연출하며 자기만족에 빠져들지 않을 것. 무엇이 되어주어야겠다는 교만함을 버리고 배움의 시간을 담담히 함께 채워갈 것. 천성이 감상적인지라 9년차를 넘긴 지금도 그게 어렵다. 종종 자책하고,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또 ‘오버’하며 여전히 배워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