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말에서 5세기 초까지 고대 그리스에서 유행하던 특별한 종류의 도기가 있다. 심포지온이라 불리는 술 파티에서 사용되던 대접 모양의 와인잔(사진)인데, 부리부리한 두 눈이 새겨져 ‘아이컵(eye cup)’이라고 한다. 내가 이번 학기에 가르치는 디오니소스 신에 관한 세미나에서 이 아이컵의 유래와 용도, 그 의미에 관해 토론했다. 고대 그리스와 관련 있는 이집트 예술에 흔히 나타나는 ‘호루스의 눈’은 왕권을 수호하는 상징으로 뱃머리에 흔히 새겨지며 악령을 쫓는 부적으로 쓰인다. 그래서 그리스의 ‘아이컵’도 불운을 막고 술 마시는 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 대접 잔으로 와인을 들이키면 잔이 얼굴을 덮는 가면처럼 보였다.
술을 마시는 행위는 디오니소스 신의 기운을 흡수하는 행위다. 변신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가면극을 관할하는 신이기도 했다. 니체의 말대로 디오니소스는 서구 문명의 바이탤리티, 약동하는 생명력에 큰 기여를 하였다.
두 살 반 넘은 딸이 요즘 끊임없이 그리는 것이 동글동글한 눈이다. 기다란 물고기의 두 눈, 귀가 뾰족한 토끼의 두 눈. 딸의 스케치북 어디에나 눈이 그려진 것을 보며 나는 시각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인류의 보편적 특징이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기원전 4000년 메소포타미아 우루크에서 발굴된 눈이 새겨진 돌조각 우상(偶像), 메소아메리카 올멕 문명과 마야·아즈텍 문명의 도기에도 그리스 아이컵처럼 독특한 모양의 눈이 새겨져 있다. 고대 중국의 제사용 청동기 그릇에 새겨진 상상의 동물인 도철의 문양도 이에 상응한다.
사람의 눈은 결국 보아야 할 것을 본다. 한국 민중은 진실을 보고 있다. 이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디오니소스적인 바이탤리티와 함께 아폴로적인 냉정과 이지, 정직과 침착을 회복하기를 기원한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