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자의 눈길 사로잡는 순정효황후 12등 적의

2025-01-2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경운박물관(관장 조효숙)은 지난해 9월 26일(목)부터 오는 2월 28일(금)까지 경운박물관에서 《기억하고 추억하는》 소장품 전시를 열고 있다.

경운박물관은 근대 복식 전문박물관으로 경기여고 동문의 자원봉사와 후원을 통해 그간 41회의 기획전시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경기여고 동문과 일반인의 유물 기증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4회의 기증전도 열었는데, 지난 20여 년 동안의 전시를 되돌려보고(Rewind)ㆍ다시 생각하는(Remind) 전시 곧 그동안 선보였던 소장품들 가운데 110여 점을 3개 주제로 나누어 기획전시실에 전시하고 있다. 전시 구성은 1부 ‘관람객이 사랑한 기증품’, 2부 ‘특별전을 빛냈던 재현품’, 3부 ‘박물관이 복원한 출토복식’이다.

박물관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박상진 학예사는 반갑게 맞아주면서 테블릿피시를 활용하여 상세한 설명을 이어나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큰 공부를 하게 되었다.

1부 ‘관람객이 사랑한 기증품’에서는 우선 박물관 대표 소장품인 오학병화도모담(五鶴甁花圖毛毯)을 소개한다. 우리에겐 ‘카펫’으로 알려졌고, 천일야화 가운데 ‘나르는 마법의 카펫(magic carpet or flying carpet)’이 널리 알려져 흔히들 서양에서 들어온 양탄자 정도로 알지만, 실은 조선에서 오래전부터 짜 쓴 모담(毛毯, 일명 계담-罽毯)이 있었고, 그 모담이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넘어가 조선철(朝鮮綴), 조선단통(朝鮮段通)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담은 실제 국내에 유물로 전해지는 것은 없고, 일본의 축제(마쓰리)에 사용되는 수레(가마보코)의 외부 장식품으로 사용되어 오던 것이 있는데 일본 기온재단의 고문 요시다고지로가 수집한 조선시대 조선철 1점을 기증받아 전시하게 된 것이다. 우리 겨레도 서양의 양탄자 못지않은 모담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 전시에서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1부에서는 모담 말고도 을미사변(乙未事變) 당시 순직한 한산이씨 이경직(李耕稙, 1841~1895) 일가로부터 기증받은 사명기(司命旗)와 수기(手旗)가 관람객들을 반긴다. 이 밖에 기증자의 사연이 담긴 목가구와 함께 연화문 수 보자기와 상보, 수베개, 왕실 베갯모, 다듬이ㆍ홍두깨질 관련 유물도 선보인다.

그런데 관람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2부 ‘특별전을 빛냈던 재현품’이다. 2부에서는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입었던 12장 면복과 12류 면관을 전시했다. 이 재현품은 2017년 대한제국 선포 120돌을 기려 ‘대한제국, 복식에 깃든 위엄’ 특별기획전 당시 국내에서 처음으로 재현하여 전시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임금이 9장 면복을 입었지만,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뒤 훨씬 위엄있게 보이는 12장 면복을 입은 것이다.

또 12장 면복에 이어 황후의 위엄과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순정효황후 12등 적의(翟衣) 일습(재현품)이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전시품은 세종대학교에 소장된 것을 2010년 경기여고 100주년기념관 이전 개관 기념으로 재현하여 ‘아름다운 시작’(2010)전에 선보인 것이라고 했다. 적의 직물은 가로로 12마리의 꿩무늬(적문-翟紋)와 꿩무늬 사이에 오얏꽃(李花) 무늬가 직조되어 있다.

이 재현작업에는 조효숙ㆍ김소현 자문, 청석(靑舃, 신)에 황해봉, 후수(後綬, 띠)에 이상숙, 금사(金絲)에 노진선, 직조(織造, 옷감을 짜는 일)에 강석문, 자수(刺繡)에 유미강, 금박(金箔)에 김기호, 대수머리 수식(修飾, 머리 모양 꾸밈)과 패옥(佩玉, 좌우에 늘이어 차던 옥)에 김영희, 침선(針線, 바늘과 실로 옷을 짓는 일)에 강영서 외 15인의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유물재현팀이 함께 했으며, 안인실ㆍ박경자ㆍ김진아가 지도했다. 이를 보면 이 12등 적의 재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땀과 정성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있다.

감탄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박상진 학예사는 대한제국 복식을 브랜드로 경기여고 동문의 자원봉사를 통해 현재 국내에 남아 있지 않거나 상태가 좋지 못한 대한제국 복식유물 재현작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전한다.

3부 ‘박물관이 복원한 출토복식’에서는 경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황희 정승 4대손인 황윤헌(黃允獻, 1475년 출생 추정) 무덤 출토복식 가운데 일부를 공개했다. 이 출토유물(36점)은 후손으로부터 기증받았는데, 복원작업을 거쳐 선보인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삼회장 저고리, 육합모(예모), 행전(발목에서 무릎까지 바지통을 모아주며 바지 위에 참), 명정(돌아가신 분의 관직과 본관, 성씨를 적은 기(旗))을 전시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조선시대 남성의 옷 가운데 아름다운 옷의 하나인 철릭(허리에 치마와 같이 주름을 잡은 치마가 연결된 형태의 남성용 포)이 현재는 유물 보호를 위해 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번 전시는 경운박물관의 지난 20여 년 동안의 전시를 돌아보며, 관람객들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던 전시품 가운데 박물관 소장품으로 한 번으로는 아쉬웠던 유물들을 또다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나 조선의 양탄자 모담과 황제가 입었던 12장 면복, 순정효황후 12등 적의 그리고 1400년대 입었던 출토복식 등 놓칠 수 없는 귀중한 전시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을사년 설 명절을 맞아 전시를 보려는 관람객들에게는 아쉽게도 연후인 27일부터 30일까지 박물관이 쉰다. 또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아침 10시부터 문을 열고 저녁에는 4시에 일찍 닫아서 관람 시간이 짧은 점은 관람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한 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일 수도 있음이다. 이 훌륭한 전시에 많은 관람객이 찾아준다면 앞으로는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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