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비상금까지 털어넣게 된 대미 투자

2025-11-09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누구나 얻어맞기 전까지는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트럼프의 대(對)중국 무역정책은 엉망진창(Hot Mess)이다’는 제목의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타이슨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허세를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이징은 반격했고, 미국이 관세로 얻은 것은 찾기 힘들다”고 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일전(一戰)을 치밀하게 대비해 왔다. 자체 개발한 저성능 AI 칩 384개를 연결해 엔비디아 시스템에 필적하는 최첨단 AI서버를 구축했다. 미국의 제재를 뚫고 독자 생존에 성공한 것이다. 올해 대미 수출은 16.8% 줄었지만 전체 수출액은 6.1% 늘었다. 반면에 미국은 중국이 희토류를 팔지 않으면 방위산업과 첨단 기술 제조업의 문을 닫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전력투구해도 자체 공급망 확보에 5~7년이 걸린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 카드를 꺼내들자 트럼프가 “제압하는 것보다 협업함으로써 우리가 더 크고 우수하며 강해질 수 있다”며 바로 꼬리를 내린 이유다. 그러면서 동맹국의 팔을 비틀어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무역수지 적자를 해결하려 한다. 이게 상도의에 맞는 일인가.

국제수지, 외환시장 안정 위한 돈

해외 직접투자는 선례 없어

산업 공동화, 제2의 IMF 없어야

국회서 철저히 따진 뒤 비준해야

우리가 트럼프의 횡포에 맞선 관세협상에서 최악의 상황을 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긴장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7월 1차 합의 때 미국과 합의한 총투자액 3500억 달러 가운데 최대 5%인 175억 달러만 현금 투자라고 했다. 나머지는 대출이나 보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완전히 달랐다. 10월 2차 협상 결과는 연간 최대 200억 달러씩 10년간 2000억 달러의 현금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마스가)에 투입되는 1500억 달러는 별개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상업적 합리성’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은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투자위원회가 움켜쥐고 있다. 그는 월가의 환전 브로커 출신 유대인이다. 보스를 위해 정치적 결정을 내리면 한국 경제에는 재앙이 될 것이다.

한국의 대미 외국인 직접투자(FDI)까지 포함하면 매년 200억 달러를 훨씬 넘는 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국내 투자와 고용, 재정·통화 관리에 문제가 없는 것일까. 외환보유액은 국제수지 불균형을 보전하거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보유하는 비상금이다. 이걸 꺼내서 해외에 직접투자한 전례가 없다. 정부는 지금의 외환보유액 4200억 달러는 유지할 거라고 한다. 이자와 배당을 활용하고 부족하면 해외에서 조달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케이스인 외환위기 가능성도 대비해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일본은 노련한 통상국가답게 “양국 국내법을 존중한다”는 조항을 미국과의 합의문에 넣었다. 대통령실은 조약이 아닌 한·미 간의 양해각서(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비준 동의가 필요없다고 한다. 위험천만한 논리다. 국가 예산의 심의·확정에 대한 헌법적 권한은 국회가 가지고 있다. 국회는 합의사항을 철저히 따져본 뒤 비준해야 한다. 통상조약법 13조는 국회 비준 시 재원 조달 방안과 국내 산업 보완대책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무총리, 경제부총리도 국회 비준 동의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관세가 유지되는 동안 기업의 피해가 우려된다면 여야가 초당적으로 신속하게 처리하면 된다.

거액의 대미 현금 투자가 이뤄지면 미국에선 일자리가 늘어나겠지만 한국에서는 실업자들의 곡소리가 들려올 수도 있다. 외환관리에 문제가 발생하면 한국 경제는 곤두박질칠 것이다. 동맹과 협력하되 때로는 반대 의견을 내고 국익을 사수해야 한다. 재앙을 피하고 건강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길이다. 중국의 희토류처럼 우리에게도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을 한국에 팔기로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소프트웨어에 강점이 있지만 제조업이 약하고, 유럽은 제조업이 강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약한데, 한국은 두 역량을 두루 잘 갖췄다.” 우리의 무기는 기업의 경쟁력이다. 회사가 망할 각오로 매달려 반도체·조선·자동차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려놓은 이병철·이건희·정주영의 결단이 있었다. 기업의 족쇄를 풀어주는 과감한 규제개혁과 산업정책으로 세 거인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한국 경제에 부활시켜야 할 시점이다.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굴기(崛起)하고 있다. 미국의 첨단 기술은 여전히 강하고 군사력은 압도적이다. 우리가 무시당하지 않고 생존하려면 힘을 키워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대미 현금투자도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산업 공동화와 제2의 IMF 사태를 맞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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