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계열사의 사업성을 진단하는 전담 조직을 새로 만들어 미래전략실·사업지원TF 출신의 최윤호 사장에게 맡긴다. 사실상 그룹 콘트롤타워의 부활인데, 냉철한 경영 진단과 함께 그간 멈췄던 삼성의 사업구조 개편과 인수합병(M&A) 시계가 다시 돌아갈 전망이다.
28일 삼성글로벌리서치(SGR·옛 삼성경제연구원)는 경영진단실을 신설해 최윤호(61) 삼성SDI 대표(사장)가 실장을 맡는다고 밝혔다. 삼성 그룹 씽크탱크인 SGR은 그간 계열사 경영 진단과 인력개발 용역을 주로 맡았는데, 경영진단실은 ‘관계사 요청에 의해 경영, 조직, 업무 프로세스 등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도출하는 전문 컨설팅 조직’이라는 설명이다. 삼성 관계자는 “각 사의 경영진단팀은 회사 최고경영자(CEO) 직속이라 객관적인 진단이 어렵기에, 보다 정확한 진단을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삼성 내부에선 ‘지원’보다는 ‘지휘’ 역할이 클 것이란 전망이 많다.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 후 생긴 삼성전자 사업지원TF가 인사·재무 지원 및 사업 시너지 발굴 등을 맡아왔지만, 그룹사의 다양한 사업을 심층 파악하고 지휘하는 역할은 비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지난 5년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를 겪으며, 삼성의 굵직한 M&A나 매각은 한동안 아예 멈춘 상태다.
SGR 경영전단실은 마치 건강검진센터에서 내시경·자기공명영상(MRI)을 찍듯 각 계열사를 한두 달간 집중 진단해, 기존 사업 성과 측정은 물론 경영 감사, 나아가 매각과 인수 합병 조언도 할 예정이다. 각 회사의 아전인수 격 희망사항이 아닌, 객관적 진단을 내리겠다는 거다. 이를 이끄는 최윤호 사장은 미래전략실, 사업지원 TF, 최고재무책임자(CF)를 거쳐 지난 2021년부터 3년간 삼성SDI 대표를 맡아 배터리 사업을 키워왔다.
최 사장의 후임 삼성SDI 대표직은 최주선(61) 삼성디스플레이 대표가 이어받고, 삼성디스플레이 대표는 이청(58) 부사장이 내부 승진해 맡는다. 최주선 사장은 4년간 삼성디스플레이를 이끌며 LCD(액정표시장치)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개편하고 스마트폰·태블릿용 중소형 OLED 사업 세계 1위를 지키는 등 굵직한 성과를 냈다. 배터리 사업이 국제 정세와 대외 환경에서 어려움에 처한 삼성SDI의 조종석에 앉게 됐다.
승진한 이청 삼성디스플레이 신임 대표는 그간 회사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중소형 OLED 사업을 이끌어 온 공정 및 기술 전문가다. 최근 BOE·비전옥스 같은 중국 업체들의 거센 OLED 추격을 따돌리는 기술 혁신을 이룰 임무를 맡았다.
이날 삼성SDS 대표이사도 교체됐다. 지난 4년간 회사의 클라우드·인공지능(AI) 사업 전환을 이끈 황성우(62) 대표가 물러나고, 이준희(55)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부사장이 사장 승진해 신임 대표를 맡는다.
이번 인사는 전날에 이어 삼성 ‘기획·전략 기능 강화’와 ‘미전실 출신 중용’의 연장이다. 전날 삼성전자는 반도체(DS) 부문 내 경영전략담당(사장)을 신설해 김용관(61) 사업지원TF 담당을 승진 임명했고, 박학규(60)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는 사업지원 TF내 반도체 담당을 맡겼다. 김용관·박학규·최윤호 3인 사장 모두 미전실 출신의 전략·재무 전문가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전문경영인이 배출되지 않고 기존 인력에서 ‘돌려 막기’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위기 진화를 위해 지난 5월 전영현 부회장(64)을 반도체 부문장으로 긴급 투입한 이후로, ‘60대 초반까지’라는 암묵적인 인사 규칙도 사라지는 추세다. 삼성 안팎에서는 ‘위기 상황에 경험 많은 CEO를 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시각이 많지만, ‘새 사람을 키우지 못하고 안주한다’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