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그늘이 나를 키우다

2024-06-30

땡볕 내리쬐는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볕을 피해

너도 나도 그늘막 안으로 모여든다

한 발짝이라도 더 들어가려 몸을 밀어 넣는다

그늘진 삶은 살지 않겠다고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녀도 한줄기 볕은커녕

그늘의 끈질긴 인연 벗어나지 못한다

햇볕 들지 않는 삶을 남의 탓으로 여기며

행여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면 남이 볼까 봐

억지 미소를 띄우며 살아간다

귓가를 스치는 실바람에 누군가 살펴보니

뜨거운 아픔 견디어내며

그늘막이 양쪽 날개를 활짝 펴고

내 마음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눈 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아

다가오려 하면 더 멀리 달음질하였는데

잠시 멈추어 심호흡 크게 고르니

나를 키우고 있는 커다란 그늘 이제야 보인다.

◇김나무= 2005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별까지 걸어가다’, ‘소리를 빗질히다’. 2007년 20014년 숲속의 시인상 수상. 2010년: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도서 선정 ‘별까지 걸어가다’. 2018년: 한국 여성 문학100주년 예술인상. 2022년 ‘중앙뉴스 문학상 우수상’.

<해설> 요즘 도심의 교차로 횡단보도에 그늘막이 설치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시설물이다. 그늘과 함께 시원한 바람도 제공되는 그런 신생의 시설물이 시의 소재가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바람직한 현상이다. 또한 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새로운 물건을 무엇이라 불러준다는 것도 시인의 몫이 아닐까.“그늘진 삶은 살지 않겠다고 발바닥에 불이 나게/뛰어다녀도 한줄기 볕은커녕/그늘의 끈질긴 인연 벗어나지 못한다/햇볕 들지 않는 삶을 남의 탓으로 여기며/행여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면 남이 볼까 봐/억지 미소를 띄우며 살아간다” 그러한 자신을 시인은 그늘막에 들어서야 사유한다는 점에서 “그늘이 나를 키운다”는 제목은 신선한 또 하나의 의미가 되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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