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005930)가 외부인재를 연달아 수혈하고 ‘올드맨’을 대거 중용하는 등 전방위 위기 돌파를 위한 특단의 인사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재를 통해 조직 분위기를 쇄신함과 동시에 과거 실력이 검증된 베테랑을 기용해 위기가 드리운 사업 분야에선 빠르게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이다. 최근 ‘수시 인사’ 방침을 강조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인재경영 철학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 들어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마우로 포르치니를 디바이스경험(DX)부문 최고디자인책임자(CDO·사장)로, 소피아 황-주디에쉬 전 토미힐피거 북미 대표를 글로벌 리테일 전략 부문 총괄 부사장으로 선임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포르치니 사장은 필립스와 3M, 펩시코에서 CDO를 역임하는 등 글로벌 디자인 업계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삼성전자가 외국인을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황 부사장은 캐나다 허스슨스 베이 백화점 사장, 울타 뷰티 전략 부사장 등을 거친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유통 전문가다.

두 사람의 영입은 디바이스경험(DX) 부문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요가 정체되고 경쟁사 추격 강도가 심화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가전 산업에서 ‘디자인 경영’을 확대하고,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 판로를 넓히기 위한 전략도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서다.
내부 인사도 기존 관행을 벗어났다. 삼성전자는 지난 1일 마케팅 전문가인 김철기 부사장을 가전(DA) 사업부장으로 임명했다. 김 부사장은 삼성자동차로 입사해 부품기술과 품질업무 등을 담당했고 스마트폰, 가전, TV 등 전 제품군에서 영업과 마케팅 업무를 맡아왔다. 이미 한해 사업 그림이 다 나온 시기인 만큼 영업과 마케팅 면에서 빠른 트렌드 변화를 잡아내고 판매처를 늘리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삼성전자에서 가전 사업부를 이끄는 수장은 엔지니어 출신이 맡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의외의 인사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말했다.

올드맨 중용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유럽총괄(구주총괄) 책임자로 성일경 전 부사장을 재선임했다. 성 부사장은 2022년 말부터 유럽총괄을 맡다 지난해 말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몇 달 만에 다시 복귀하게 됐다. 고(故) 한종희 부회장의 유고 이후 이뤄진 인사로 유럽총괄 자리가 비게 되면서 즉시 전력감인 퇴임 임원을 불러들인 것이다. 앞서 2023년 말 현직에서 물러났던 이원진 상담역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으로 선임되며 복귀했다.
다만 일각에선 올드맨 기용에 대해 삼성전자의 ‘인재 부족’이 심화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수많은 ‘S급 인재’를 영입했지만 상당수 중요 인재들이 5년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이재용 회장이 영입한 ‘1호 인재’ 세바스찬 승(승현준) 삼성리서치 사장부터 컴퓨터 구조 분야 석학인 위구연 하버드대 석좌교수, 최연소 임원 타이틀을 달았던 인도 출신 천재 과학자 프라나브 비스트리, '빅스비' 개발을 주도했던 래리 헥, AI로보틱스 분야 권위자인 다니엘 리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