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줄에 널린 빨래가 하지의 햇살에 춤춘다.
장독대에 가지런한
낡은 등산화에 심어 둔 봉숭아꽃이 빨갛다.
아들아이의 노란 장화 한 켤레가
세 살 무렵의 보폭으로 달개비꽃을 부르더니,
덩굴져 이웃한 천사의 나팔로 손을 내민다.
뒤꿈치 닳은 갈색 부츠의 안쪽에 뿌리내린
분꽃이 만발하여 변두리의 단칸방
물집 잡힌 골목을 파노라마친다.
가족의 발자국이 모여서 이룩한 인생꽃밭이다.
◇정미소= 2011년 ‘문학과 창작’으로 등단. 시집 <구상나무 광배>외. 목멱문학상, 리토피아문학상,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
<해설> 어떤 특정 장소를 관찰 후 객관적 묘사로 마치 눈앞에 선하게 그려냄으로 왠지 친숙한 흥미를 유발케 하는 그런 시 창작의 방법적인 모색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시이다. 신고 다니다가 수명을 다한 가족의 신발들 등산화, 노란 장화, 부츠가 옥상에 올라와서 꽃을 담는 그릇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신발은 길의 기억을 간직한 소품들이니, 결국 길이 꽃으로 핀 셈인데, 이는 이미 그러한 연출을 해놓은 시인의 마음이 이미 신이라는 본질 (고정관념)을 깨고 있음에 장면을 언어로 옮겨놓는 것만으로도, 옥상은 또 다른 이상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하지의 햇살 아래 춤추는 빨래들, 그 아래 물집 잡힌 골목이 파노라마 친다는 시인의 주관 또한 상당히 돋보인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