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 살 야놀자, 두 가지 전략을 가집니다. 하나는 이제 엄마 품 떠나서 밖으로 나가보겠다는 거고요. 다른 하나는 밖에서도 먹고살 만한 든든한 총알을 확보해 보겠다는 겁니다.
이 둘을 각각 키워드로 정리해 본다면, ‘미국 상장’과 ‘AI 솔루션’ 되겠습니다. 국내에선 야놀자 못 들어본 사람 드물겠지만, 글로벌로 야놀자는 스스로 존재를 알려야 하는 그야말로 아직 ‘스타트업’이죠.
엄마 품 떠나 밖으로, 미국 상장
물론, 야놀자가 그냥 스타트업은 아닙니다. 그간 누적투자를 2조4000억원이나 받았습니다. 지난 2021년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가 야놀자에 시원하게 2조원을 투자금으로 쏘면서 평가받은 기업가치가 대략 8조원입니다. 당시엔 유니콘을 넘어, 단숨에 데카콘(기업가치 100억달러)에 도달할 가능성도 점쳐졌죠.
한 회사가 이렇게 많은 투자를 받게 되면, 시장의 관심은 “투자자들이 어떻게 엑시트를 할 수 있는가”에도 쏠립니다. 지난해에는 블룸버그 발로, 야놀자가 기업가치 10조원을 목표로 미국 상장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야놀자 상장=미국’으로 점점 공식화 되는 것은, 국내 시장에서 상장해서는 야놀자가 원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블룸버그 보도가 있은 이후에도, 국내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에선 야놀자의 기업가치가 5조원 이하로 평가되는 등 기대 만큼 자금을 확보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야놀자가 그간 받은 투자 규모를 생각한다면, 주주 이익 실현을 위해서라도 미국 시장에서의 상장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라는 거죠. 물론, 국내에서 미국 상장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회사인 것만은 틀림없기도 하고요.
야놀자도 지속해 그런 분위기를 띄우고 있습니다. 지난 2일 경기 성남시 판교 텐엑스타워에서 열린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회사를 창업한 이수진 야놀자 총괄대표(=사진)는 “앞으로 10년은 글로벌 넘버원 트래블 테크 기업으로 도약하며 임직원들과 함께 혁신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이 자리에서 글로벌을 말하면서 에디나 프리드먼 나스닥 CEO의 축전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프리드먼 CEO는 이날 축전에서 “여러분은 혁신과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업계를 재정의하고 발전을 주도해왔다”면서 “한계를 뛰어넘는 열정은 정말 고무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나스닥을 대표해 여러분과 팀 전체의 지속적인 성공을 기원하며,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고도 언급해서 “야놀자의 상장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예상을 끌어냈죠.
야놀자 측에서는 상장과 관련해 공식적으로는 “아직은 확정된 사항이 없다”는 입장입니다만, 김종윤 야놀자클라우드 대표는 “여러 곳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창립 20주년 기념 현장에서 운을 띄웠습니다.
야놀자 측에서는 “상장이 아직은 급하지 않다”고 말하는데요. 여기에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글로벌 인지도이기 때문에 이름값을 확 높일 수 있는 강력한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고, 그 중 하나가 나스닥 상장이 될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는 맥락이 읽힙니다. 시장에서 확실한 분위기가 읽힐 때까지는 상장 카드를 조금 신중하게 꺼내겠다는 뜻도 보이고요. 김종윤 대표의 ‘러브콜’이라는 표현 역시, 그런 취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물론, 예상대로 야놀자가 미국에서 상장한다고 해서, 그게 끝은 아니죠. 야놀자라는 기업 자체의 입장에선 상장이 시작입니다.
만약, 야놀자가 상장한 후 주가가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걸 막기 위해선 쟁쟁한 미국 기업들과 인지도, 실적 경쟁을 해야합니다. 그래야 시장의 선택을 계속해 받을 수 있겠죠. 야놀자의 미국 상장과 관련해 투자 업계에서는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 받아 기존 투자자들이 엑시트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기면서도, “주가 방어를 위해서는 미국 시장을 비롯한 글로벌에서의 인지도 높이기와 실적 개선”이라는 숙제를 풀어야 할 것으로 분석합니다.
야놀자가 지속해 “글로벌로 거래액과 매출을 개선하고 있는 회사” “AI로 돈을 벌기 시작한 회사”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그 AI 솔루션 이야기는 다음 단락에서 이어갑니다.
밖에서도 먹고 살 만한 든든한 총알, AI 솔루션
야놀자는 최근 회사의 두 축을 중심으로 조직개편을 진행했습니다. 그간 회사를 키워 온 중요한 축, 캐시카우인 ‘여행 플랫폼’ 기능은 ‘놀 유니버스’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법인을 만들면서 하나로 정리했습니다. 배보찬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이 조직에선 일반 여행객들이 숙소를 알아보고 비행기 편을 끊고 주변 액티비티 상품을 찾아 예약하는 모든 서비스를 종합해 제공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축. AI 솔루션입니다. 야놀자의 캐시카우는 여전히 여행 플랫폼이지만, AI 솔루션을 다루는 야놀자클라우드의 성장세도 흥미롭습니다. 야놀자는 지난 3월 31일, 2024년 재무제표를 공시했는데요. [관련기사: 티메프 사태 극복한 야놀자, 연매출 1조원 고지 넘본다]
야놀자 측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1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정확히는 9245억원)을 냈고, 그중에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2% 성장한 2926억원을 차지했다는 겁니다. 숫자로 계산하면 전체 매출에서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31%입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중에서도 AI 데이터 솔루션의 매출 비중이 2024년 1분기 14%에서, 2024년 4분기에는 25%까지 늘어났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직은 여행 플랫폼 대비 적은 수익이지만, 야놀자 측은 이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그중에서도 AI 솔루션의 성장세를 강조하는 모습입니다. 왜냐면, 이 AI 솔루션이 야놀자가 원하는 몸값을 미국에서 받아낼 수 있도록 하는 무기라고 판단했으니까요. 여행 플랫폼 만으로는 미국에서 비벼 경쟁자들과 이기기는 어렵지만, 상품 판매마다 쌓여온 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AI로 더 싸게 여행 상품을 공급하는 솔루션”을 공급한다면, 시장에서 글로벌 테크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회사가 어떤 AI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다이나믹 프라이싱’이라는 모델은 경쟁 환경에 따라 호텔 객실의 값을 자동으로 바꾸주는 툴입니다. 내부에 있는 ‘레비뉴 매니저’가 인벤토리(보유한 객실 상품)를 더 잘 팔기 위한 합리적 가격대를 여러 데이터를 바탕으로 뽑아주는 것이죠. 또, 객실 판매 플랫폼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싼 값에 인벤토리를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 아니겠습니까. 인벤토리 가격이 저렴할 것으로 예측되는 날짜와 시간을 예측하고, 그때 자동으로 인벤토리 가격을 확인 후 확보하는 것 역시 야놀자가 구현하고 있는 기술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하반기, 이미 100여개의 호텔에서 야놀자클라우드의 다이나믹 프라이싱을 테스트했습니다.
이게 되려면 데이터가 많아야 하니까, 야놀자 측이 최근에 ‘글로벌 통합 거래액(Aggregate TTV)’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야놀자에 따르면 2024년 글로벌 통합 거래액은 전년 대비 186% 증가한 27조원입니다. 통합 거래액은 트랜잭션 솔루션을 통해 수수료가 발생하는 직접거래액(Direct TTV)과 데이터 솔루션 및 구독 솔루션을 통한 간접거래액(Indirect TTV)의 총합으로 구성되는데요.
야놀자 측 관계자는 “실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많다는 것은 통합거래액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면서, “거래에서 발생하는 인사이트가 야놀자에게는 데이터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글로벌로 야놀자의 AI 솔루션이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느냐는 부분입니다. 지금도 야놀자 측은 “글로벌로 진출하는 국내 여행업체는 야놀자가 유일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놀자클라우드가 28개국 69개국 지사를 운영하면서, 확보하고 있는 메타 데이터와 매출의 비중 대부분은 국외에서 나오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여행 시장은 크게 디지털화되지 않았고, 그만큼 야놀자가 개척해야 하는 시장은 넓지만 험난해보입니다.
앞서 김종윤 대표는 지난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소뱅의 비전펀드의 투자를 유치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AI로 돈 버는 회사가 되라”는 주문을 받았던 것을 회고 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비전펀드는 포트폴리오의 중심에 AI 회사를 두고 있었죠. 그러나, 당시만 해도 AI로 돈을 버는 회사는 드물었습니다. 김 대표는 이런 상황을 두고 “AI 로 현재 수익내는 기업이 전세계에서 굉장히 드문 상황이고, 이 중 야놀자는 AI 솔루션 및 서비스로 실제 돈을 벌고 있다”는 내용을 강조한 것이죠.
야놀자가 올해든 내년에든 미국 나스닥 행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AI로 돈 버는 회사’를 넘어 ‘AI로 돈 많이 버는 회사’가 되어야 할 겁니다. 지난해 탄력받기 시작한 AI 솔루션 사업이 얼마만큼 영역을 더 확장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