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국가 탄소세가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정책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수가 온실가스 감축이 아닌 재정 확보나 국제사회 요구 충족을 목적으로 도입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독일 에를랑겐-뉘른베르크 프리드리히 알렉산더대 연구팀은 1990~2023년 처음 도입된 19개국의 ‘낮은 수준’ 국가 탄소세를 전수 조사한 결과, 초기 세율이 배출 감축 효과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연구는 국제 학술지 원 어스(One Earth)에 실렸다.
조사에 따르면 19개국 중 절반 이상은 세수 확보나 비(非)기후 분야 지출, 국제기구 가입 요건 충족 등 비기후적 목적을 우선시했다. 스위스·프랑스·캐나다 등 일부 국가는 정치적 반발을 피하기 위해 낮은 세율로 출발한 뒤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정책 내 서열화’ 전략을 택해 기준치를 조기에 넘어섰다. 그러나 다른 국가에서는 세율 인상이 최대 30년 이상 지연되기도 했다.
일본·콜롬비아·싱가포르는 탄소세 수익을 에너지 효율 개선 등 다른 기후정책 재원으로 활용했으나, 세율 자체는 장기간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2023년에도 12개국은 여전히 감축 효과 기준에 미달하는 세율을 유지했고, 상당한 세금 면제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탄소 가격제 확대는 원칙적으로 긍정적이지만,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순배출 제로 전환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많은 경우 탄소세는 애초에 배출 감축 목적이 아니라 재정·상징적 목표로 설계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각국이 ‘탄소세가 있다’는 명분 뒤에 숨어 보다 야심차고 긴급한 감축 정책을 미룰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있으나 마나 한 탄소세가 아니라 감축 목표를 달성할 만큼 강력하고 체계적인 탄소세가 도입돼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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