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거닉은 메이저리그(MLB)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에서 38년간 LA 다저스 담당 기자로 일했다. 건실한 야구 기자였던 그는 2014년 1월 전 세계 야구팬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유명인사가 됐다. 그해 MLB 명예의 전당 헌액 투표에서 ‘제구의 마법사’ 그레그 매덕스를 뽑지 않은 탓이다. 명예의 전당 투표권을 가진 미국야구기자협회 소속 기자는 후보 중 최대 10명에게 표를 던질 수 있다. 거닉은 단 한 명, 1980년대의 스타 잭 모리스에게만 투표권을 행사했다. “금지 약물이 판치던 시대(1990~2000년대)의 선수에게는 투표하지 않겠다”는 게 이유였다.
매덕스는 150년 가까운 MLB 역사에서도 제구력으로 첫손에 꼽히는 투수다. 스테로이드와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금지 약물로 힘을 키운 동시대 타자들과 맞서면서 역대 유일하게 17년 연속 15승 이상을 올렸다. 그래도 거닉은 “그 시대를 거친 모든 선수에게 의심을 거둘 수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이런 결정에 동료 기자들과 야구팬은 거세게 반발했다. 야후스포츠의 제프 파산은 “모리스를 찍고 매덕스를 찍지 않은 것은 중대한 직무유기”라고 했다. 일부 야구팬은 “거닉은 그저 관심을 받고 싶은 것 같다”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그해 매덕스를 뽑지 않은 기자는 거닉 외에 3명 더 있었다.
이듬해엔 랜디 존슨과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후보로 나왔다. 현역 시절 존슨은 ‘괴물’, 마르티네스는 ‘외계인’으로 불렸다. 둘은 매덕스와 함께 ‘약물의 시대’에 초인(超人)적인 성적을 낸 에이스 트로이카였다. 그래도 이탈자는 나왔다. 미네소타 지역지 세인트 폴 파이오니어 프레스의 마이크 베라르디노는 둘을 빼고 다른 선수 10명의 이름을 적어냈다. 그는 “존슨과 마르티네스는 다른 기자들이 뽑을 테니, 더 절실한 선수에게 나의 한 표를 줬다”고 했다.
모두의 생각이 같은 곳으로 모이는 건 이렇게나 어렵다. 2020년 데릭 지터가 그랬고, 지난 22일(한국시간) 스즈키 이치로가 그랬다. 둘 다 이견의 여지 없이 위대한 선수였지만, 딱 한 표가 모자라 만장일치 문턱을 넘지 못했다. ESPN의 버스터 올니는 “그 한 명이 이치로를 뽑지 않은 이유가 뭔지 정말 흥미롭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이치로가 “인생은 원래 불완전하다”며 진화에 나서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거닉이 비난에 휩싸였던 2014년, 폭스스포츠의 켄 로즌슬은 이렇게 말했다. “바보 같은 결정이지만, 명예의 전당 투표권을 얻은 거닉의 경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 권리를 가진 이상, 그는 자신의 소신대로 찍을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손에 쥔 투표권 한 장의 무게와 의미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기만 하다면. 역대 유일한 ‘만장일치 헌액자’ 마리아노 리베라(2019년)가 새삼 대단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