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길 남기고, 고정관념 넘은 당신…우리가 신세 많았습니다”

2025-11-25

편찮으시단 말씀은 전해 들었지만 이렇게 황망히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늦가을 새벽 비보를 접하고 누군가는 오래된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신 느낌이라고 말하는데, 저에게는 인생의 지혜를 넉넉하게 채워주신 은사님이 돌아가신 것 같아서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제가 문화방송에서 PD로 일하던 1980, 90년대엔 두 분의 국민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한 분은 ‘전원일기’의 최불암(용식이 아버지), 또 한 분은 ‘사랑이 뭐길래’의 이순재(대발이 아버지). 아스라한 그 시절 우리 아버지의 모습들을 어찌 그리 정겹고 자연스럽게 표현하셨는지요. 타고난 천재성에 성실성을 겸비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선생님께 감사드릴 일이 떠오릅니다.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JTBC) 첫 대본 연습 시간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릅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작가님이 세 아들(유동근 송승환 윤다훈)의 아버지역을 맡은 노배우의 연기에 고개를 자꾸 젓더니만 드디어 폭탄선언을 하신 겁니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그날 밤 이순재 선생님께 구원 요청을 했는데 사실 그때도 (늘 그랬듯이) 엄청나게 바쁘실 때였죠. 그러나 잠시 고민하시던 선생님은 “대작가의 작품이니 어렵더라도 시간 만들어봐야지” 하셨습니다. 그때 솔직히 저(당시 제작본부장)는 대배우의 기사 노릇이라도 자청하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말씀하시길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조건 작품 그 자체라고 강조하시더군요. 작품성을 중요시하는 선생님의 연기철학을 저는 현장에서 직관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선생님은 스스로 작품이 되셨습니다.

대중예술계는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 언제라도 강제 퇴장이 벌어지는 살벌한 곳이죠. 이런 곳에서 60여 년 이상 꾸준히 살아남았다는 건, 아니 다채로운 연기를 펼쳤다는 건 그저 열심히 해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영정 앞에서(열정 앞에서) 저는 두 개의 동사를 떠올렸습니다. ‘남다’ 그리고 ‘넘다’.

선생님은 대학 시절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한 ‘햄릿’을 보고 배우의 꿈을 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햄릿에겐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였지만 배우에겐 남느냐 넘느냐가 문제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연기자의 ‘길’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고정관념의 ‘벽’을 넘으셨습니다. 점잖게 살아온(적어도 그렇게 보인) 50년을 야동순재(‘거침없이 하이킥’)로 일격에 무너뜨렸고, 느리게 걸으며 사색하던 미음완보(微吟緩步)는 직진순재(‘꽃보다 할배’)로 엎어뜨렸습니다. 돌아보면 선생님의 속보 전환은 삶의 시간이 아까워서였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1분 1초의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벽을 넘어 별이 되셨습니다.

선생님의 90리 인생길은 진리에서 순리 섭리로 마침내 완성된 느낌입니다. 철학 전공자답게 진리를 추구했지만 결국 자연 앞에서 순리와 섭리로 화해한 삶이었습니다. 유명한 배우가 세상을 떠나면 밤하늘에 별이 하나 늘어납니다. 하지만 선생님에겐 별보다 길의 비유가 더 어울립니다. 당신이 개척한 길목마다 후배들에겐 친절한 내비게이션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묻습니다. 연기란 무엇이고 인기란 무엇인가. 배우와 스타의 차이를 온몸으로 뚜렷하게 보여주신 분이 바로 당신이십니다.

배우는 결국 제목으로 남습니다. 연극은 ‘지평선 너머’(작가 유진 오닐)로, 드라마는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1 KBS 개국드라마)로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지평선 너머로 가셨지만 뚜렷이 완성된 인간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을 겁니다. 시청자들에게 유언으로 남긴 마지막 수상소감을 오늘 당신께 그대로 돌려드립니다.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주철환 전 JTBC 대PD,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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