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신을 통해 유럽연합 최대의 철강 생산국인 독일이 철강산업 위기 타개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다는 소식을 접했다.
독일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최근 티센크루프 등 대표적인 독인 철강업체 경영진과 노조 대표들과 만남을 갖고 철강산업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각사 대표들은 높은 에너지 가격과 아시아 국가의 저가 공세, 경기 침체 등으로 독일 철강산업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점을 항변했다고 한다.
숄츠 총리는 회의 직후에 몇가지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경기 침체를 감안하여 철강기업들이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국가 지원 연장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에너지 비용과 관련해서는 전기 송전비용을 킬로와트시(㎾h)당 3센트로 제한하고, 송전망 비용을 부분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내년에 송전망 요금이 인상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철강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숄츠는 덤핑과 시장을 왜곡하는 보조금으로 인한 경쟁 왜곡에 대해 유럽위원회에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EU는 철강 부문에 대한 추가적인 무역 보호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숄츠 총리는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철강은 앞으로 수세기 동안 우리 산업의 일부로 남을 것이며, 장기적으로 독일의 철강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며 지원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영국 산업장관 조나단 레이놀즈도 최근 ‘철강 전략 구축’이라는 의제로 열린 의회 회의에서 철강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 지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처럼 독일과 영국이 특정 산업에 대해 파격적으로 지원한 것은 철강산업이 가진 특수성과 중요성 때문이다.
독일은 세계 7위의 조강생산국이며, EU에서는 가장 큰 생산국이다. 2022년 기준으로 552억 유로의 매출과 약 9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산업이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큰 제조산업국이고, 철강은 제조산업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수년간 높은 전력비용과 저가 수입재 유입 확대로 위기를 겪고 있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재생 가능한 자원을 통해 철강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수십억 유로의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로 독일 최대의 철강기업인 티센크루프는 지난 5년 중 4년동안 적자를 기록했고, 이로 인해 지난달에 2030년까지 일자리 1만1,000개를 감축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티센크루프는 약 2만7,000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41%에 가까운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설비 조정 등을 통해 연간 생산량을 1,150만 톤에서 향후 870만~900만 톤으로 줄이는 것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자국 내 일부 유통 사이트를 폐쇄했고, 철강사업부 지분 20%를 체코의 억만장자인 다니엘 크레틴스키가 운영하는 에너지 기업 EPCG홀딩스에 매각했다. 이에 더해 지분 30%를 추가로 매각하는 것에 대해 협상을 진행 중이다. 또한 잘츠기터와 프랑스 발루렉과의 철강 합작사인 HKM의 매각 또는 폐쇄도 검토 중이다.
우리나라의 철강산업 역시 독일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성장 기조 속에서 내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저가 수입재 유입은 늘면서 흑자 경영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장치산업의 특성상 적정 수준의 가동률을 유지해야 하지만 위기 요인으로 인해 이미 몇몇 업체들은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려 있다. 우리 정부도 철강산업의 위기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총리가 직접 발벗고 나선 독일을 보면서 철강기업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정책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