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상상은 그만…“움직여야 즐겁다”

2024-07-26

‘진화론 바탕 과학적 행복 연구’ 선구자 서은국 교수

“쾌(快)는 동(動)입니다. 행복해지려면 움직이세요.”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의 말이다. 10년 동안 1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행복의 기원』(21세기북스) 저자인 서 교수는 ‘진화론에 바탕한 과학적 행복 연구’의 선구자다. 행복을 ‘how(어떻게)’가 아닌 ‘why(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그는 “행복은 ‘쾌(pleasure)’와 관련된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의 총합”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생존하고 DNA를 남기기 위해 행복한 느낌을 찾아가는 거라고도 했다. 그는 한국인의 정서와 행동을 ‘과학이 말하는 행복’의 관점에서 독특하게 분석한다.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에 있는 연구실에서 서 교수를 만났다.

행복의 본질을 ‘쾌(快)’로 설명하셨는데요.

“행복의 본질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합니다. 좋고 즐거운 느낌의 합인데, 사람마다 상황 따라 다릅니다. 배고플 때는 음식이 즐거움을 주지만 실컷 먹은 뒤에는 즐거움이 아니죠. 사람들은 즐거움을 유발하는 스위치(강남 아파트, 승진·합격 등)를 행복과 동일시하는 것 같아요. 또 행복감을 마음먹기 따라, 훈련에 따라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러면 행복이 가까워진다’는 메시지가 넘쳐나죠.”

그렇다면 “감사일기를 써라”는 것도 문제가 있는 건가요.

“감사가 아니라 분노할 일인데 감사일기 쓰는 건 일시적 자기기만이죠. 어떤 변화의 차원에서 시도해 볼 수는 있지만 약발은 오래 못 갑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 맞는 정서적 반응을 하는 게 중요하죠. 화날 때 화내고 기쁠 때 기뻐하는 이 전구가 적시에 켜졌다 꺼졌다 하는 뇌를 소지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어요.”

‘쾌’는 범위가 넓고 주관적인데, 마약을 하면서도 쾌를 느끼기만 하면 행복인가요.

“철학자들은 늘 행복을 얘기하면서 윤리적 도덕적 이슈를 언급했어요.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행복의 본질은 아니라는 겁니다. 행복은 사회적으로 용인 되느냐 손가락질 당하느냐가 아니라 본인이 느끼는 즐거움의 합이라고 했죠. 만약 인간이 하루살이라면 마약을 하면서 극도의 쾌락 속에서 딱 죽는 게 행복일 수 있겠죠. 하루살이가 아닌 인간이 그런 경로로 경험하는 행복·쾌감은 비용이 점점 늘고, 일상적인 게 아니고, 쾌감보다 고통이 더 크니까 엄청난 손해죠.”

우리나라나 일본·싱가포르 같은 국가가 행복감이 낮은 건 초집단주의 때문이라고 하셨는데요.

“나의 주관적인 경험보다는 사회적 평가를 염두에 두도록 훈련받은 사회에는 ‘행복 정답지’가 생겨요. ‘난 이래서 행복해’가 용납 안 되고 ‘이 틀 안에 들어와야 행복한 거야’ 라는 표준을 조장하고 강요하는 건 비극이죠. 거기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거든요. 거기 못 들어가면 낙오자 같고 잘못 살았다는 느낌을 갖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아요.”

그런 나라들의 특징이 또 있죠.

“우리는 행복감을 걱정·불안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불행하지 않은 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사회는 안정지향적입니다. ‘조심해’ ‘하지 마’ ‘다쳐’가 입에 붙어 있어요. 유교 철학의 핵심은 ‘체제의 안정적 유지’입니다. 수천 년 동안 그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지배했죠. 본전 찾는 게 인생의 목적은 아니잖아요. 다치지 않으려면 집안에 있으면 돼요. 여행을 하다 보면 모기에도 물리고 소매치기도 당하고, 그게 추억이 되고 그게 모인 게 행복인데, ‘소매치기 때문에 못 가고, 모기 때문에 못 간다. 애들도 가지 마라’고 하면 생각이 깊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철없는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지단 박치기’ 사건, 프랑스는 동상 세워줘

서 교수는 TV의 노르웨이 여행 프로를 보면서 뒤통수를 맞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500m 높이의 피요르드 절벽 끝에 50m 정도 뾰족 튀어나온 데가 있는데 그야말로 절경이다. 아무 안전장치가 없는데 관광객들이 거기 가서 사진 찍다가 떨어져 죽기도 한단다. 한국 같으면 철조망 치고, 해골 그려놓고 했을 거다. 리포터가 “너무 위험하지 않나” 물어봤더니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경이로운 경관을 망칠 만큼 그게 중요하지 않다. 각자 알아서 하는 거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서 교수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개인의 삶을 지켜봐 주고 권장하는 사회입니다. 각자 알아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면 되는 거죠. 자기가 싫으면 안 하면 되는데 남까지 못하게 하잖아요. 이게 사회적인 피로”라고 말했다.

‘지단 박치기 동상’ 얘기도 재미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에서 프랑스 주장 지네딘 지단은 이탈리아의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해 퇴장 당한다. 프랑스는 승부차기로 졌지만 “여동생을 모욕하는 말을 참을 수 없었다”는 지단의 말에 프랑스 국민은 그를 이해하고 옹호한다. 심지어 박치기 장면을 재연한 5m 높이 동상을 퐁피두 광장에 세웠다. 이 동상을 구입한 카타르 정부는 4주 만에 철거한다. “개인을 우상화하고 폭력을 조장한다”는 원리주의자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서 교수는 “개인의 감정과 선택을 존중해 주는 문화가 있고, 개인보다는 공동체나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전체주의적 문화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개인의 행복감을 높여줄까요”라고 반문했다.

행복감은 유전적 요인이 크고, 외향적인 사람이 행복할 확률이 높다면서요.

“외향적인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DNA에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크기 때문이죠. 내향적인 사람은 자극을 즐기다가도 ‘이거 투 머치 아닐까. 여기까지 할래’ 합니다. 가장 큰 자극의 원천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외향성이죠. 이들은 음식도 더 자극적으로 먹고 음악도 더 크게 틀고 운전도 더 빨리 합니다. 쾌는 움직임과 관련이 있거든요. 외향적인 사람은 움직임을 좋아하고, 부산물처럼 쾌가 따라옵니다.”

요즘 프로야구 인기가 엄청납니다.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고 먹고 마십니다. 저는 한국 프로야구를 ‘국민 오락’이라고 이름 붙였거든요.

“맞는 말입니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함께 만나서 쾌를 생성하는 거죠. 응원하는 팀이 지면 막 안타까워하면서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어요. 또 우리가 일상에서 표출하기 힘든 감정을 털어낼 수 있는 공간이 경기장이죠. 욕을 해도, 소리를 질러도, 야유를 해도 용납 되잖아요.”

10:0으로 뒤지다가 막판에 1점 냈다고 “나는 행복합니다” 노래하는 만년 하위 팀 팬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비합리적인 면이 있어요. 그 비합리성이 생존에 도움이 되기도 했죠. 넷플릭스 다큐 ‘죽어도 선덜랜드’는 2부, 3부로 강등된 잉글랜드 프로축구 팀 이야기인데요. 쇠락한 철강산업 도시 선덜랜드 주민들은 축구가 유일한 희망인데 연고 팀은 절망과 고통만 줍니다. 그래도 그들은 황폐한 도시에서 고통일지언정 유대감을 나누며 삽니다. 어떤 공동체가 자아의 일부가 되는,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이죠. 자식이 없는 것보단 속 썩이는 자식이라도 있는 게 낫다고나 할까요. 하하.”

“미스 샷 걱정에 인생 클린 샷 놓치지 말길”

행복한 삶을 위해서 특별히 하는 게 있나요.

“없습니다. 행복은 프로젝트가 아니에요. 압정이 많이 깔려 있으면 밟을 확률이 커지잖아요. 행복감을 주는 압정들을 인생에 많이 깔아놓으면 됩니다. 그건 공장에서 찍어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개발하고 찾아야 합니다. 저는 별 것 아닌 데서 즐거움을 느껴요. 그림 보고, 음악 듣고, 스포츠에는 약간 미쳐 있고

. 운전도 좋아해서 부산에 강의가 있으면 차 몰고 당일 갔다 옵니다. 우리는 미래에 크고 멋진 게 있을 거라고 상상하고 그걸 향해 가는 ‘과정의 시간’을 희생하는 게 맞다고 세례를 받았어요. 특히 학생들이 그렇죠.”

서 교수는 작고한 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 얘기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코비가 NBA 득점 역대 4위인데, 그보다 높았던 기록이 미스 샷 횟수(1위)랍니다. 우리는 미스 샷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 폭발한 그의 아름다운 골을 기억하죠. 미스하지 않으려다 인생의 클린 샷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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